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스토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2,446회 작성일 23-09-07 20:37

본문

스토너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략)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 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다. 아니 오히려 안쓰럽다. 그는 학자나 교수로서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사랑에 있어서도 실패했다.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그에게 적대적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는 불륜을 저질렀다. 그가 끔찍이 생각하던 하나뿐인 딸은 그녀의 가족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임신하게 되고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사회생활도 성공적이지 못해, 그의 친구 핀치를 제외하면 그에 대해 대부분이 무관심했다. 다른 소설 속 주인공들을 비교해보았을 때 그의 인생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역사가 아니다. 깊은 연민을 느끼기에는 그가 겪는 갈등과 사건은 비교적 평이하다. 




   주인공인 스토너는 답답할 정도로 인내한다. 다른 영웅적 소설의 주인공과 달리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내가 딸을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할 때도, 불륜이 걸려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힐 때도, 동료 교수에게 험담을 모함을 당할 때도, 그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인내한다. 그것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에게 오는 시련의 원인은 과거의 나의 선택이며, 그 값을 치러야 비로소 이상적인 삶인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대학을 갔지만, 그는 영문학에 빠져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교수까지 된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는 가족을 잃었다. 연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디스에게 반해 청혼했고, 결혼했다. 하지만 이디스가 원치 않았던 결혼이었기에 그의 결혼 생활은 한 달을 가지 못해 실패했다. 학과장이 지도하는 학생의 박사학위심사에 불합격을 주었고, 그 이후의 교수생활은 죽을 때까지 험난했다. 인내는 그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삶을 표현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Trade off와 zero sum. 인생에 모든 선택에는 장단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값은 삶의 끝에 가면 0이 될 것이다. 스토너의 삶이 딱 이러했다. 많은 선택을 했고, 성공과 실패가 존재했지만 결국 끝에 가서 남은 것은 0이다. 그는 죽기 직전 침대에 누워 계속하여 되뇌인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고난 가득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무미건조한 삶이든, 다 마지막엔 똑같은데. 너도 나와 같은데. 우리 모두 스토너인데.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 – 신형철 (문화평론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