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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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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405회 작성일 23-09-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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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헨리 나우웬


  오늘날과 같은 경쟁적인 기술 혁신 사회에서, 우리 삶의 방식 전체는 성공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 이르는 상향성의 구조로 짜여 있다. 우리의 부모와 교사와 친구들은, 우리가 세상의 빛을 보는 그날부터, 이 세상에서 업적을 이루는 것이 바로 우리의 거룩한 과업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오랜 경쟁에서 싸워 승리해야 하며, 지금 처한 상황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성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배운다. 따라서 삶은 우리가 승리하거나 패배하게 되는 일련의 투쟁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평생토록 투쟁을 목표로 하는 세상에서 살아왔고, 경쟁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에 승자에게 값진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패자에게 비참한 말로가 주어지는 것도 모두 타당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만약에 누군가가 좋은 학교에 가지 못했거나, 가난하던가, 실직 상태에 있던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가, 말 안 듣는 자식을 키우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실패는 그 자체로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보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건전한 경쟁과 진보, 혁신과 도전은 결코 폄하될 만한 가치가 아니다. 인류 문명은 그 역사 동안 수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사회 전반의 안전과 편리는 상향 곡선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많은 사람인 상향성을 개인과 사회의 목표로 두고, 마치 종교처럼 열심히 믿고 따른다는 데에 문제를 두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세상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한다. 그 길은 하향성의 길,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하향성의 길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낮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높이는 길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신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죄인으로 스스로를 낮춰 인간과 교제하였고, 이를 통해 인간이 신적인 존재에게 손을 뻗는 상향적인 여타 종교와 구별되는, 신이 인간에게 손을 뻗는 하향적인 구조를 가진 기독교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넘어 예수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가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 모두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세상의 길의 상향성과 그리스도인의 길의 하향성은 서로 대치되기 때문에, 두 길을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이러한 충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만 다니고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가짜 기독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향성의 길을 걸어가셨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상향성에 대한 유혹 세 가지를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사단이 던진 첫 번째 시험은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상황에 부합하라는 시험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상황 가운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좋은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대학이 있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유산이 있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월급이 있다. 생산성이 있는 존재는 인정받고, 없는 존재는 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도록 요구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배가 고프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에 요청을 거부하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답하신다. 이는 떡의 중요성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하여 평가 절하한 것이다. 인생에는 늘 필요가 있고 우리는 그 필요를 구할 수 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받으신 시험은 남의 이목을 끌라는 시험이었다. 사단은 예수님께 성전 위로 올라가 스스로 떨어지면 천사들이 받쳐주어 살려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시험한다. 요즘 보면 많은 교회가 이목을 끌어 사역하려는 시험에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많이 참석하는 예배가 귀하고, 수준 높은 음악을 하는 찬양팀이 환영받고, 많은 이들이 등록하고 싶어 하는 교회가 성공한 교회라 착각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통계에 쉽게 영향받고, 눈에 띄고 유명해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 양 행동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단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다. 이는 우리가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에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외적인 성공과 사람들의 칭찬은 쉽게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충분한 교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세 번째 시험은 권력 획득의 시험이었다. 사단은 예수님께 모든 나라와 권세를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말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께서는 누구보다 나약하고 무력한 몸으로 오셨다. 그분은 철저한 계급 사회였던 로마에서 피식민지인인 유대인, 그중에서도 보잘것없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 외에는 그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실 모든 인간은 무력한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연약함을 커버하기 위해 높은 권력을 추구한다. 더 높은 권력에 도달하여도 우리는 다시 무력감을 느끼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권력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무력함에서 선이 나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며 손을 잡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을 읽으면서 문뜩 연구자야말로 상향성에 집착하기 쉬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쉼 없이 학업 경쟁을 이겨나가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연구성과를 발표하기 위해 논문을 빠르게 작성하고, 과제를 따오기 위해 다른 그룹보다 공격적인 성과 목표를 잡아야 한다. 연구자들은 연구 목표에만 매진하다 보면 본인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는지, 목표 의식을 잊고 연구하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마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지만, 본인들이 어떤 살상 무기를 만들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많은 연구자처럼. 이제는 하향성의 길을 걷는 연구자가 되어보고자 한다. 나 스스로를 높이고 삶의 영위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나 스스로를 낮추어 주변을 함께 높이는 연구자. 이 땅의 권력이 아닌 선한 영향력을 위해 낮은 곳에서 섬기는 연구자가 되는 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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