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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나이 든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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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492회 작성일 23-09-1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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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 나이 든 노인 ”

- 민시우 著 「약속」 을 읽고 -

 

엄마 !

오늘은 저번보다 벚꽃이 많이

진짜 엄청 많이 폈어요.

저는 그래서 제가 죽을 때 봄이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엄마한테 벚꽃을 손에 들고

엄마한테 선물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벚꽃을 엄마한테 이제 줘야겠죠.

엄마, 이제 제 마음처럼 예쁜 벚꽃을 선물할게요. - 민시우 ‘네 번째 계절’ -

 

 

얼마 전 유재석님이 진행하는 인기 예능 ‘유 퀴즈 온더 블록’에 민시우 라는 소년이 출연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은 동시를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민시우 군은 5년 전 일곱 살, 병으로 인해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빠와 둘이 제주도에 살며 시 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소중한 사람을 잃는 큰 슬픔을 겪었기에, 그의 시 대부분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편지 혹은 일기의 형식이었다. 방송 이후 민시우 군의 슬픈 사연과, 예쁘고 고운 만큼 더 슬프게 느껴지는 시의 글귀로 큰 화제가 되었다. 민시우 군의 아버지이자 영화감독인 민병훈 감독은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며 민시우 군의 시를 모아 「약속」 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길은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골목길, 지름길, 되돌아가는 길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빠른 길도 있고 천천히 가는 길도 있다.

나는

빠른 길도 아니고 천천히 가는 길도 아니고

영원히 가는 길을 갈 것이다.

영원히 가는 길은

엄마를 만나는 길이니까. - 민시우 ‘길’ -

 

시우 군의 시를 보면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순수한 아이의 마음 그대로 표현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나 자신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처음 읽을 때는 아주 쉬운 말들로 이루어졌으면서도 평소 내가 듣고 말하는 어감(語感)과 달라 오히려 곧바로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다 두 번 세 번 읽어 보면 이처럼 쉽고 부드럽게, 실제로 ‘말하는 듯한’ 말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내적 탄성을 지르게 된다. 슬픈 사연이 뒤에 있지 않아도 시우 군의 시는, 한 뼘의 공간 안에 가장 큰 마음을 적어낼 수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삶에서 치열하거나 냉정하게 살아남기 위해 이런 어린 시절의 마음을 점차 잊어가며,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때론 빙빙 돌리거나 때론 거칠게 말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그리고 요즘에는 여든이 넘은 노장 김성근 감독님에게도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얻는다. JTBC에서 방영하는 ‘최강 야구’ 라는 프로그램은, 은퇴한 유명 야구 선수들과 프로가 되고 싶은 아마추어 유망주들이 혼합된 야구 팀을 만들어 국내의 여러 팀과 경기를 하는 방송이다. 작년 새로운 시즌에 들어서 한국 야구계의 역사와 같은 김성근 감독님이 팀의 감독을 맡게 되었고,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감독님의 언행과 마음가짐은 존경심이 절로 들게 만든다. 보통 이런 예능에 나오는 경력자들은 결국 재미를 위한 방송이기 때문에 때론 오만하거나 나태하게 경기에 임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은퇴하고도 분야를 대표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 게임 전인데 벌써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야구라고 하는 건 단체 운동이야.

동료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고,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해.

팀에 피해 주지 않는다는 의식을 가지라고.

그런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돼.

우리가 지면 이 식구들 하루아침에 다 없어져.

우리 뒤에 제작진만 200명이 있어. 그 뒤에는 500, 600명의 가족들도 있다.

우리가 실수하면 이 사람들한테 어떤 피해를 주겠어

그걸 잘 인식하라고.

어쨌든 시합에는, 상대가 프로가 되든 아마추어가 되든 관계 없어.

어떤 시합을 해도 이겨야 돼. 알겠어? - JTBC ‘최강야구’ 中 라커룸에서, 김성근 감독 -

 

가끔은 내 능력을, 내 위치를 그리고 내 발자취를 믿고 그걸 빌미로 잠시 나태함에 대한 합리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더군다나 주변에서도 그런 나의 이기심에 동조해준다면, 잘못됨을 경계하는 눈은 더 멀고 코앞의 달콤함을 탐하는 눈은 욕심에 물든다. 그럴 때마다 김성근 감독의 늙지 않는 열정과 부러지지 않는 겸손함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잘 다스리리라 결심한다.

어린아이에게서 배운 순수한 진심과, 나이 든 노인에게 배운 겸허한 지혜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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