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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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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624회 작성일 23-09-1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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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난 1년 반 동안 쓴 독후감들을 돌이켜보고 있자면 나는 참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고, 또 좋아하는 편인듯 하다. 읽었던 책 중 절반 이상이 자기계발 혹은 그것을 빙자한 수기이니 말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동안에 책은 그 안에 나와 있는 그대로만 하면 내 삶도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달콤한 말에 취한 후 책장을 덮고 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그 자체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긴 자신감은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금새 꺼져버리기 일쑤이다.

여기에는 물론 개인의 의지 문제도 있겠으나, 책 자체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의 효용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말을 성공한 사람들의 권위에 빗대어 거창하게 포장한 알맹이 없는 책이라는 의견이다. 결국에 그런 책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기에, 누구에게나 적용될만한 두루뭉실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용, 특정 사람들에게만 적용될만한 내용, 관점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모두 배제된 일반론을 개개인의 삶에 알맞게 적용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것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야하는데 사실 그것부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바뀌지 못한 막연한 지침들은 기억에서 이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문학이 자기계발서보다 더 뛰어난 점은 인물들의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다라는 한 줄의 교훈을 나타내기 위해 문학은 인물과 배경과 줄거리, 문체를 치밀하게 설정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의 개성이 생기고, 독자들은 주인공과 상황에 공감하고 감동하기도, 자신을 투영하고 비교도 하면서 자연스레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감동과 깨달음은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자취를 남긴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서는 특유의 개성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비단 책 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서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외적인 방식이 될수도, 내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자기 자신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특별한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투쟁한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여기저기서 사회와 마찰이 생기기에 마냥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통념에 맞춰 점차 깎여 나가고, 좋게 말하면 둥글둥글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점차 색깔이 흐린 사람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이 책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그런 인간 본성에 착안하여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을 풀어낸 소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데미안을 만나 내면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 즉 소년이 한 사람으로서의 개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그 과정에서 데미안 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프란츠 크로머), 정신적 깨달음을 주는 사람(피스토리우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바 부인) 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이루는 선과 악 사이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작품에서 말하는 선악은 절대선, 절대악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은 사회가 일반적으로 모두 바른 방향이라고 여기는 것. 예를 들어 정직, 배려, 근면, 청결 등이다. 반면 악은 때로 필요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것. 분노, 충동, 예민, 오만 등이 있을 것이다. 선과 악에서 중심을 잡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 헤세는 책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나는 참 개성이라는 게 부족한 편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느끼는 바이기는 했지만 모른 채 외면하고 있었는데, 책의 주제로서 그것을 마주하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의 영역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남들의 눈치를 과하게 보다보니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였을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며,  호불호가 조금이라도 갈릴 것 같으면 내 의견을 숨기고, 대세를 따라가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만의 스토리도 부족하고,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게 되버린 듯하다. 그러다보니 점차 그냥 무미건조한 자기계발서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현하는 과정은 아직까지도 참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건 평생해야 하는 과정인걸까.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은 그만두어야 하네."

 

내가 자기계발서를 좋아했던 진짜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을 읽는 동안에는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읽으나 마나한 막연한 내용을 전하는 활자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인생이란 정해진 답을 찾아가기만 하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실상은 전혀 그게 아님에도 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데미안의 핵심을 요약한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다. 처음 봤을때는 막연히 자신의 한계를 깨나가라는 진부한 의미가 아닌가 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참 의미를 되뇌일 수 있었다. 태어나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하면서 살아간다.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는 곧 세계가 된다. 여기서의 핵심은 마지막에 나오는 신 ‘아브락사스’이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신이다. 즉 우리가 알을 깨뜨리면서 나아갸아할 방향은 무조건 선이 아니라, 선과 악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이어야 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사회가 악으로 규정한 가치들이 개인에게서까지 악으로서 억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가치는 양면의 동전과 같아서 분노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예민은 감각이, 오만은 자신감이, 충동은 결단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나에게 닿기 위해서는 다수의 선이 뿜어내는 압박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나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낼 때, 나만의 개성있는 멋진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나의 삶은 딱딱한 자기계발서가 아닌 한편의 문학이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내게는 이 글이 바로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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