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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건축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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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492회 작성일 23-10-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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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그대, 아련한 추억이 서린 나만의 장소가 있는가. 나는 가끔, 고향에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나의 동네를 보며 여러 감정이 떠오르곤 한다. 오랜 터줏대감이었던 금은방과 약국은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카페와 베이커리,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는 풍경을 보며 아쉬운 한편, 지금도 여전히 골목 끝자락 자리에서 장사가 잘 되고 있는 메밀국수집을 발견하면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든다. 또, 초행길이었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법한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골목길도 유년시절 순수했던 기분을 살려 걷다 보면 전혀 불안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잠시 떠났던 부모님의 그리운 품에 다시 돌아와 익숙하게 안기는듯 평온해지고 잠잠해진다.


신의 의도에 따라 땅과 바다가 창조되었다면, 그 대자연 위에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반드시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생각한다.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면, 국정원의 모든 방은 전부 똑같은 철제문으로 원형 복도를 따라 창문을 등진 채로 위치해 있는데, 명패도 걸려 있지 않다고 한다. 아마 옆방조차도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기밀을 철저히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잘 계획된 건축물일 것이다. 또, 상하구분이 확실한 조직을 보면 상급자일수록 출입문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아 있고,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반면 조직의 막내는 언제나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쉽게 노출되어 있다. 요즘 수평적 체계를 지향하는 회사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직책 구분 없이 호칭을 통일하고 자리의 구분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렇듯 인간이 설계한 건축물이나 구조물들은 모두 창작자의 의도가 심어져 있기 마련인데, 아직도 나는 왜 카이스트 전기전자동 1층 몇몇 문들이 높고 좁게 만들어졌는지와 왜 대전시내 도로들은 헷갈리게 되어있는지 그 의도를 여전히 잘 모르겠다.


뉴스를 보면, 종종 재개발 대상으로 지정된 구역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이 국가나 재개발업체로부터 더 높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알박기를 시전하여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곤 한다. 대부분은 어느 한쪽이 피해를 크게 감수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것 같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 랜드마크인 시티그룹센터도 계획 당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건축 예정 부지에 오래된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철거를 거부한 교회의 입장을 존중하여 건축가는 공중권(Air right)라는 건축법을 해결책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이 경우 교회 위로 건물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뉴욕시는 이렇게 공중권을 매집하는 방식으로 알박기 문제를 해결해왔는데, 덕분에 초고층빌딩 사이사이로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도시경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매우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한정된 자원과 시간 내에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상적인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피해를 입을 타인에게 양보를 구해야 하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일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갈등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미숙했으나 경험을 거듭할수록 원만하게 대처해내는 법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많이 배워가고 있다. 공학이나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 예술분야에서도 창작자의 의도와 메시지가 숨겨진 경우가 많은데, 단편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감상에 그저 취해있기보다 그 안에 품은 속뜻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분야를 막론하고 문제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단련해야 할 최우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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