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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에 관하여 -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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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424회 작성일 23-08-14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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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에 관하여

김남준


  저는 염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고 낙천적으로 살려고 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근심과 걱정이 들어있죠.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나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 날을 앞두면 저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새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의 염려가 많은 기질을 신앙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뱃속에 생명이 잉태되는 날부터 저는 몰려오는 염려를 이기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는 있을까? 혹시라도 유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내의 몸은 출산을 무사히 이겨낼 수 있을까?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육아 관련 예능 프로그램과 인터넷 글들을 읽어보지만, 미디어 매체를 통해 접하는 육아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저의 염려를 되려 강화하고 말았습니다.

  ‘염려’란 무엇인가? 염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염려는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나치게 염려하는 친구를 만나면 우리는 ‘뭘 그렇게 염려하냐?’고 묻곤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친구가 그 문제를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원하고 집착합니다. 관심이 없는 것에는 마음을 쓰지 않죠. ‘염려에 관하여’의 저자 김남준 목사님은 그의 저서를 통해 염려는 그릇된 자기 사랑에서 온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릇된’ 자기 사랑인 이유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우리가 욕망하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건강한 나, 돈 많은 나, 성공하는 나, 인정받는 나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을 잃는 것을 염려하고, 돈 잃는 것을 염려하고, 실패하는 것을 염려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염려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변적인 것을 욕망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염려는 필연적인 운명과 같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불변하는 것을 바라봄으로 자신의 염려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철학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념이, 또 과학적 진리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시스템이기에 사람들의 합의만 있으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불변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진정으로 불변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만들 수 없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염려를 내려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릇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주는 존재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변적인 것들을 대부분 돈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결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는 불안함을 넘어서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다시는 볼 수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인생의 많은 스트레스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데, 사람 사이에서 돈은 적당한 매개체는 될 수 있어도 절대적 해결 수단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돈을 의지하고 의존합니다.

  인생의 말초적인 필요는 돈을 통해 공급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필요는 인생의 설계자에게서 옵니다.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염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인생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는 염려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재물을 집착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고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돈을 의지하면 안 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결말을 알게 되는 것처럼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라, 말은 쉽지만 이를 배우는 중에도 염려는 불현듯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먼저는 끊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염려에 파묻혀 견디기 힘들다면, 너무 먼 미래를 보며 두려워하지도, 지난 과거를 바라보며 비참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삶의 에너지가 충분할 때는 먼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당장의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자신의 힘이 감당할 수준으로 시간을 쪼개야 합니다. 1개월 뒤를 바라봐도 좋고 1주일 뒤를 계획해도 좋습니다. 정 힘들다면 오늘 하루를 사는 데 집중 해야겠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면서 점차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기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의 고난을 직시하기 두렵고 힘들면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사람이 대신 마주할 수 없고, 오직 우리 스스로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용기를 내고 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사람은 용기만 있다면 생각보다 강한 존재이고, 우리가 대면하는 현실의 문제는 지나고 보면 생각보다 할 만한 상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온 입장에서 수능과 입시를 기억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분명 힘든 일이었지만 충분히 대면할 만한 일이었다 기억할 겁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죠.

  셋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데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고 염려가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도라는 것은 종교적 행사에서 사람들이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어려운 사람은 짧게라도 말하면 좋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날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게 이겨낼 힘을 주세요…’ 이런 짧은 한마디의 기도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짧은 기도가 익숙해지면 조금 더 길게 기도해 보고, 이후에 점차 늘려가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느낍니다. 내가 마음먹는 대로 내가 바라는 이상향의 사람으로 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최근에도 잠을 청하고자 잠자리에 누우면 염려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지난 오늘 하루의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일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를 계속하다 보면 저 자신도 모르게 스스르 잠에 들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나에게 평안하게 해주신 것일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내일 있을 연구 미팅이 염려되고, 교수님과 연구실 일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염려가 되고, 취업과 결혼과 육아와 인생의 모든 굴곡이 염려되어 힘들다면 제게 오세요. 제가 기도하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어젯밤이 평안했던 것처럼 당신의 오늘 밤도 평안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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