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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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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525회 작성일 23-08-1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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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우유부단하게 쉽사리 결정을 못내리는 증세를 일컫어 ‘햄릿 증후군’이라고들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결정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햄릿 증후군이라는 말이 더 많이 보이는 듯하다. 나 또한 내게 결단력이 있냐, 우유부단하냐라고 물으면 우유부단한 쪽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라 햄릿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더러 있다. 이렇듯 결정 앞에서 망설이는 인간상을 상징하는 햄릿이라는 인물을 많이 인용하긴 하지만, 정작 햄릿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과연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햄릿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극을 목적으로 하는 희곡이기에 줄거리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죽이고, 왕비이자 어머니인 거트루드와 재혼하자 이에 분개한 햄릿이 복수를 계획한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재상이었던 폴로니우스를 죽이게 되고, 그러자 그의 딸인 오필리아가 충격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가 복수를 위해 햄릿에게 검술 결투를 신청하는데, 이 결투를 하는 중에 왕과 왕비, 레어티즈와 햄릿 모두 죽는 비극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사실 놀랐던 것은 줄거리 중에서 햄릿이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될 만큼 결정을 회피하거나 망설이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해당했는데, 그 범인이 숙부이고, 숙부와 어머니가 다시 결혼을 하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정신을 붙잡고 복수를 계획하는 점은 오히려 실행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릿이 망설였던 딱 한 번의 순간은 클로디어스가 기도하는 순간 뒤에서 그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는데, 이미 회개를 마친 후였기에 육신에게는 복수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천국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망설이다가 죽이지 못한 것이 아니고, 판단하여 죽이지 않은 것이므로 우유부단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의 판단이 왕을 죽였을 때 몰아칠 후폭풍이 두려워 스스로에게 내리는 합리화였을지라도 자신의 운명 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명운이 걸린 순간에 한번 더 숙고하는 게 현 시대에 ‘햄릿증후군’이라는 말이 붙여질 만큼이나 잘못된 행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즉 햄릿이라는 작품이 이렇게 유명해지고, 또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된 것은 햄릿이라는 인물의 인격적인 문제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극중 인물보다는 햄릿이라는 작품 전체가 선택이라는 우리 삶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투영하며 중대한 선택 상황에서의 고뇌를 대변하는 것 같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성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으로 견디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냐.

아니면 고해의 바다에 맞서 끝까지 대적하며 끝장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냐.”


 삶에서의 중대한 문제는 대게 운명에 순응하는 것, 혹은 운명을 거스르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진로를 설정하는데 있어 흘러가는 대로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새로운 도전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나갈 것인지, 다수에 의해 결정되어 고착화된 불합리한 사회 제도를 그냥 따를 것인지 맞설 것인지, 단지 오래 만난 연인과 결혼할 것인지 어딘가 있을 진정한 짝을 찾는 모험을 할 것인지 등의 굵직한 고민들은 모두 내가 운명의 시류를 방치했을 때의 모습, 혹은 틀었을 때의 모습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들 앞에서 누군가는 빠르게 결단하고 나아가기도 하고, 누구는 신중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결단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성급함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신중을 기하다보면 자칫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결국 최종결과에 따라 결과론적으로 판단되니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일까.

 결단과 신중. 둘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으나,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비록 성급함이 될지라도 결단을 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다. 내가 우유부단한 편이라 내게 부족한 것을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삶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남고, 추억하게 되는 순간은 어찌될까 고민하며 망설였던 순간이 아니라, 성급할지라도 먼저 저지르고 수습하면서 생겨났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피곤한 일도 생기고 때로는 그 때문 괴롭기도 하지만, 그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삶보다는 낫지 않을까. 안주하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짧고 허무한 인생을 다채롭게 채워나가는 게 나는 더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더기 아가씨의 소유가 되어 턱도 없이 골통을 무덤꾼의 삽으로 얻어맞고 있구만.

이거야말로 훌륭한 변화야. 우리에게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재주가 있으면 좋으련만."


 극 중 햄릿은 영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묘지를 지나다 해골을 발견하고 되뇌이는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한 때는 인생을 살며 행복을 누리기도, 증오에 복수를 계획하기도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의 허무함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햄릿이 지금까지도 세기의 명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덴마크 왕실에 복수극에 빗대어 우리들 삶의 핵심을 완벽히 꿰뚫는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며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명언이 참 많지만, 햄릿을 읽으며 그런 단편적인 명언들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짧고 허무한 삶을 더 의미있게 채워나가기 위해 이제는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고 더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한다.


“때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어.

진짜 딱 20초만 창피해도 용기를 내보는 거야.

그럼 장담하는데 멋진 일이 생길거야.”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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