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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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보고 -
로버트 줄리우스 오펜하이머. 그는 과거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노동운동가, 교수였으며 우리에게는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오펜하이머'는 이 과거의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의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두고 있는 영화이다. 예전부터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던 영화인데, 나에게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강한 인상을 남겨준 크리스토퍼 놀란이 과연 어떻게 보면 영화의 소재로서는 지루할 수도 있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를 직접 관람한 결과, 그 내용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흥미로웠다.
사실 해당 영화도 그렇고, 원작이 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또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에서 보여줬던 놀란 감독의 창의적인 이야기 전개를 즐길수는 없었지만, 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인생 자체가 굉장히 다사다난 했기 때문에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몰입도 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는 젊은시절 양자역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사람들은 과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책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닐스 보어, 막스 보른,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책과 학문으로만 만났던 과학자들이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것 같다. 또한, 미국에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민하고 연구했던 내용들은 우리 세상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증명되어 있던 것들이라, 어떤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것들이 이루어졌는지 엿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의 말년에, 개인적 원한으로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실각을 노린 스트로스 제독과의 공방전은, 마치 하나의 독립된 영화의 내용을 보는것만 같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을통해 다시 태어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꼬아놓았다던지, 반복적인 소리와 화면 전환을 통해 오펜하이머가 실제로 시달렸던 환영과 환각을 표현했다던지 하는 연출적인 구성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과거에 내 속에 충만해 있었으나, 지금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잊혀져 있던 과학 그 자체에 대한 탐구심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에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엔리코 페르미, 막스 보른, 그리고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 등등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잠시 영화에서 떨어져 나와 내 의식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과거에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했던 그들이 이룩했던 과학적인 성과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표면으로 끌어내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예전에 그들의 고명했던 과학적 발견들을 조금이나마 엿보았을때, 세상의 진리에 한걸음 다가간 듯한 감정을 느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영화속에서 비록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배경으로 국가적인 이득이 엮여 있었지만, 원자 폭탄이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건을 제작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넣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나는 너무 한치 앞의 현실만을 바라보고 살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호하는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고는, 저렇게 내 모든것을 쏟아넣고, 마지막에 가서는 드디어 성공했노라며 기뻐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인 성과를 이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에게는 한참 못미치는 일개 대학원생일 뿐이지만, 나도 나중에 저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현재로서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점을 느끼게 해준 영화이다.
그리고 이런 과학적인 탐구 이외에도,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장면이 있는데 영화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마지막을 장식한 대사인 '파괴의 연쇄반응' 이다. 오펜하이머가 그 당시 우려했던 것처럼, 핵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간의 군비경쟁은 현실이 되었고 실제로 20세기 후반까지 핵보유국인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지속되며 인류는 불안에 떨며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당시 학자들이 우려했던 것 처럼 핵무기에 의한 지구 멸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그것보다 더 심각한, 핵무기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더 파괴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제는 'Global warming' 이 아닌 'Global boiling' 이라는 명칭까지 사용하게 된 지구 온난화이다. 핵무기는, 너무나 알기 쉽다. 터지면 수십 수백만명이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각심을 갖고 핵무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그 영향이 핵무기만큼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괴의 연쇄반응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온도변화가 그리 크지 않는 유럽은 최근 평균기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사망자가 속속들이 발생하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고있다는 말은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냉방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그럴수록 그 과정에서 지구는 더 더워지게 된다.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는, 파괴의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가 탈출하지만, 개구리를 물에 넣어놓고 서서히 물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것도 모르고 그 속에서 죽는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과연 핵무기 같은 거창한 무기에 의한 파괴의 연쇄가 아닌, 서서히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와 같이 인류가 자신들의 터전인 지구의 온도를 조금씩 높여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이나 했을까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이를 두고볼 수 만은 없을것 같다. 우리 모두가 핵무기의 살상력을 경계하는 것처럼, 더 늦기전에 지구의 온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지만,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그 내용은 다르지만 오펜하이머가 한때 우려했던 무한한 파괴의 연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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