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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음악가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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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412회 작성일 23-09-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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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2023년 3월 28일, 류이치 사카모토는 향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평소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 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들 한번쯤은 접해봤을 이름이다. 그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절제되고 엄숙한 느낌의 정통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멀지만, 계속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 고독하고 쓸쓸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는 촉촉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1983년에 발표된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가 있다.

 

 책의 내용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장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 그간 지나온 삶과 사건들을 돌아보며 정리한 일종의 자서전이다. 대외적으로는 피아니스트이자, 영화음악의 거장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환경보호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전혀 꺼려하지 않았던 그였다. 사생활 논란이 조금 있었지만 그가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그의 삶 여기저기 잘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흔히 어떤 일에 몹시 열중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나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종종 피아노 리사이틀에 가보면 잘 훈련된 연주자가 연주에 심취할 때 눈을 지그시 감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거나 몸짓을 부자연스럽게 떠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연주자의 특이행동이 의도된 연기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허공을 초점없이 바라보거나 눈을 감아 시각정보를 완전히 차단하고 그가 연주하는 선율에 세심히 귀를 기울여서 감상하곤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의 연주가 나에게 어떤 감동적인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올 때 나는 그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아무런 잡념도 없는 상태로 연주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하늘에서 음악의 신이 강림해 고리 같은 것으로 저를 들어 올려 한 단계 높은 스테이지에 데려다 놓은 느낌이랄까요. 그전까지는 머릿속 한구석에 피아노를 컨트롤하겠다는 능동적인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사념마저 사라진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손가락이 움직였습니다. 미스 터치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가까이에서 제 연주를 지켜봐온 파트너의 말을 따르면, 그날의 공연을 기점으로 제 연주의 레벨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천재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사고방식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 영화를 통해 접했던 오펜하이머도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 이면 속에 정치이념적으로나, 인간관계와 가정사문제로 꽤나 복잡한 사람이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간혹 그가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 속에서만 벌어지는 미시 세계에서의 양자얽힘 현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에 상당부분 등장하는데, 이는 평온하고 안일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은 것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회고록 혹은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치부로 보일 수 있는 면들을 삶의 끝자락에 도달하기 전에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세상에 털어놓았다. 그의 아름다운 음악 속에 감춰진 여러 면모를 이 책을 읽으며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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