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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ate, Seaside, and Sarg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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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470회 작성일 23-06-14 02:05

본문

“ Pirate, Seaside, and Sargasso ”

- 로랑스 드빌레르 著 「모든 삶은 흐른다」 를 읽고 -

 

Pirate.

 

 항해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해적은 존재했다. 그런 해적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었나.

 ‘캐리비안의 해적’ 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는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하고, 짓궂지만 친절했으며, 누구보다 가벼운 삶을 가졌으나 그 누구의 삶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자유로운 해적. 어린 시절 해적은 우리에게 낭만의 인물이었다.

 

 현실은 다르다. 해적은 그저 해적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약자를 겨눈 약탈이고, 그들에게 법은 오직 재물이며, 그들의 바다는 잔잔한 평화가 아니라 피로 얼룩진 무대일 뿐이다. 심지어 21세기에도 해적들은 동아프리카 해안이나 동남아시아 말라카 해협 인근에 수시로 나타나 민간 운반선, 화물선 그리고 유람선 등을 납치하고 약탈하며 각국 정부를 상대로 인질 거래를 하기도 한다.

 

 다시, 항해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해적은 필연적으로 존재했다. 이 ‘해적’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史)의 수평선에도 늘 존재했다. 그들은 일상의 무기력을 이용해 부당함을 퍼뜨리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분열을 조장한다. 그런 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과 무관심에 고개를 숙이고 그저 자신만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인질은,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지 않고 체념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이런 상황을 고쳐야 한다. 부당함이 처벌받지 않고, 자신은 좋은 일을 했다고 믿는 악한 사람이 처벌받지 않으면 이보다 최악은 없다.

그렇다. 악행에는 타협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바다 위의 해적들은 무기를 들고, 협박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지었고, 우리 사회의 해적들도 해적질의 ‘시도’만으로도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그저 인질이 될 뿐이다. 입을 열고, 두 다리를 딛고, 필요하다면 주먹을 쥐고 맞서야 한다. 분노해야 정의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분노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충분히 정의로운 감정이 아닌가.



Seaside.

 

 로마 사람들은 폭염을 피해 바닷가를 찾아 휴가를 떠났다. 그들에게 Otium 은 ‘유유자적’으로, 비생산적인 것에 몰두하며 영혼과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반대로 Negotium 은 ‘분주함’으로, 바쁘게 일하며 의무와 제약 속에 살아가는 시간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오티움과 네고티움 중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우리는 흔히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어떻게 오게 된 여행인데’ 라는 생각에 무언가를 바삐 보고, 먹고, SNS에 자랑하고, 또 그 다음날도 이 여행을 누리는 ‘척’을 해야만 한다. 이런 오티움을 가장한 네고티움의 착각에 빠져, 여행에서 돌아와 곧바로 일에 투입되어도 너무자 자연스럽게 이 네고티움의 리듬에 적응해버린다.

 

 ‘Vacance’라는 용어도 라틴어 ‘Vacare’, 즉 ‘아무것도 없는/비어있는/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 공석을 뜻하는 Vacant 라는 말과 같이, 우리가 선물 받은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옭아맸던 자리를 비우고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 특히, 우리가 그토록 신경 쓰고 두려워하는 타인의 시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마침내 휴식의 바닷가에 앉아 밀려오는 평안을 찾을 수 있다. 비어있음에 불안하지 말고, 비워감에 망설이지 말자.

 


Sargasso.

 

 사르가소는 모자반으로 불리는 해조류의 동의어로, 북대서양에서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아열대 환류인 북대서양 환류 내의 해역을 뜻하기도 한다. 이 해역은 해류가 강하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며, 이로 인해 정체된 해조류들이 떠다닌다. 마치 바다의 사막과도 같은 이 해역은 숨 막히는 잔잔함으로 오히려 항해하기 어려운 해역으로 (버뮤다 삼각지대도 이 해역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바닷사람들에게 악명이 높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그저 사르가소 위를 한없이 표류하는 배는 마치 희망을 잃고 서성이는 우리의 어느 모습과 같다. 이렇게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와 같은 것이다. 끝없는 가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렇게 후회만 하느라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항해해야 한다. 평생 사르가소에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 열심히 노를 젓고, 해조류가 발목을 잡으면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해류가 가르쳐 주지 않아 가던 길을 알지 못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해 나가면 된다. 후회는 행동이라는 풍랑으로, 자책은 확신이라는 북극성(Polaris)으로 묵묵히 따라가 보면 어느샌가 사르가소를 벗어나 있을 것이다.

 

신이 얼마나 재능 있는지 잊게 될 때, 나는 바다를 본다. _Whoopi Goldberg

 

그럼 당신이 얼마나 재능 있는지 잊게 될 때, 당신이 항해하는 바다를 보기를. 그 멈추지 않는 흐름에 때론 감탄하고 때론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살아있음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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