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us Omnia San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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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어휘' 를 읽고
유선경 지음
“Que Sera, Sera”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겠지. 그런데 미래란 알 수 없으니 설령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 모든 것에 대해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케 세라 세라는 걱정하는 마음의 요동을 쓰다듬는 말이다. 그 요동이란 불안일까, 슬픔일까.
여러분은 신념이 흔들릴 때, 요동치는 마음을 다시금 단단히 지탱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나요. 예를 들면, 평소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섬기던 종교의 가르침을 한번쯤은 의심해보거나 의문을 품는 경우를 살다 보면 한번쯤 마주할 법도 합니다. 가끔 그럴 때가 찾아오면, 어떤 사람은 경전을 다시 한번 정독하면서 의미를 곱씹어보거나 난해한 내용이 있다면 목사님이나 스님을 찾아가서 지혜를 빌리고는 합니다. 저는 되도록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을 찾아가 조언 구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언자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되도록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타인의 선택을 은근히 종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그러라는 법은 또 없지만. 하지만, 어린 학창시절처럼 순수하고 대가없는 우정과 보살핌, 진심어린 위로 따위를 고집 센 어른이 되어버린 제가 이 나이에 남한테 받고자 기대하는 것은 이제 꽤 늦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두 어른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제 주관적인 기준에서, 한 분은 저와 아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앞으로 또 뵐 기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멀리 계시면서도 젊은 날 꿈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 같아 보였습니다. 두번째 분에게 정확히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몹시 궁금했지만, 초면에 실례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여쭤보지는 못했습니다. 어쨌든 두 어른의 날카로운 눈빛은 애써 감추고자 했던 저의 어두운 내면을 정확하게 읽어내시는 것 같아보였고, 특히 두번째 분은 저를 처음 보시는 데도 불구하고, 마치 옆에서 오래 지켜봐온 사람처럼 제 성격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또, 두 분은 서로 정반대되는 내용의 조언을 해주셨는데, 둘 모두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내용이어서, 여전히 고민과 최종 결정은 오롯이 저의 몫으로 남게되었습니다.
방황을 좀 오래했습니다. 이러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이곳에 왔었던 최초의 목적마저 망각하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나면서도 한편으로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요즘은. 저는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큰 아픔과 좌절을 겪어본 적이 크게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지나고 나니 이제는 별일이 아니게 된 것처럼 미화된 기억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과거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는 원리가 보편적인 것 같은데 그게 또 사람마다 흉이 지면 트라우마가 되고, 단단한 굳은 살이 되면 새로운 고난을 이겨낼 또다른 힘이 되는 뭐 그런거겠지요?
제가 두 분과의 대화에서 공통적으로 정말 좋았던 점은, 제 모습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셨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최근까지 여기서는 이제 쓸모를 다하여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쓸쓸히 느끼곤 했었거든요. 오만가지 별의별 생각도 많이 해봤고요. 그런데 오늘 내일 생각을 다시 고쳐먹게 되었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래 두고 보면 나도 그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모두가 리더가 되려고 하는데, 리더로만 가득찬 세상을 상상해보면 몹시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유토피아도 아닐 것 같아요. 우두머리의 외침을 듣고 충실하게 믿고 따라줄 팀원들도 필요하고, 옆에는 확성기를 받쳐줄 서포터도 필요하겠네요. 왜 케이팝 무대에서도 조명받는 가수 뒤편에서 묵묵히 춤만 추는 백댄서도 있잖아요. 그리고 고독한 리더의 고민을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말동무 역할을 할 친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를 팀 또는 크루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저는 여기서 팀워크를 간절히 원했거든요. 팀에서는 저도 제 생각을 자유롭게 떠들고 디스커션을 할 수 있고, 무언가를 힘내서 함께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 낯선 땅에 처음 왔을 때 남들은 선배들이 땀흘려 일궈놓은 땅 한줌과 밑그림이라도 그려진 지도 조각이라도 있었고, 심지어 삽자루까지 든든하게 물려받은 축복받은 사람까지도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저만 여기서 홀로 연고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솔직히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손톱이 까지도록 땅을 파헤쳐야 삽보다 못할테고 티도 별로 안날테니 말이에요. 그런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줘서 제 입장에서는 정말 눈물나게 감사하더라구요.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파면 가능성이 보일랑말랑 할지 제시해주니 말입니다. 방황하고 있는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각설하고, 지금은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데 당장 내린 결론으로는 결국 힘닿는 곳까지 계속 전진해보자는 것입니다. 머무르는 동안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많이 드리고 싶고, 평소에도 좋은 생각을 해보려고 많이 노력하는 중입니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개인적으로 ‘케 세라 세라’라는 말보다 먼 미래에 존재하는 노년의 나를 상상해보면서 그 노인이 시간의 차원을 넘어 젊은 시절의 나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할테니, 너는 그저 계속해라.’ 라는 말로 쭉 위로해주며 기다리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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