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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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 고바야시 유카의 '저지먼트'를 읽고 -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이 당 한일을 되갚아 줄 때, 혹은 되 갚아주고 싶을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간의 사적 제제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범죄자는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국가에서 정해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강도와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형량을 과연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수 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논쟁은 항상 존재해 왔다. 고바야시 유카의 소설 '저지먼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피해자혹은 피해자의 주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자신이 당했던 일을 그대로 되갚아 줄 수 있게 하는 '복수법'이 제정된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 '저지먼트'는, 복수법이 제정된 일본을 배경으로 여러가지 상황을 담은 단편들을 엮어놓은 작품이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관계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생판 모르는 남일 때도 있고, 부모와 자식 관계일 때도 있으며, 얼굴만 아는 지인일 때도 있다. 해당 작품은 이렇듯 다양한 상황을 통해 복수법이 제정된 세상은 과연 어떨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지나가던 불량배에게 자식을 살해당한 아버지는 피폐해져 가면서도 손수 범죄자를 때려 죽이고, 묻지마 살인범에게 약혼자를 잃은 남자는 결국 복수법 집행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것 같다. 과연 국가단위의 처벌이 아닌 개인간의 제제를 허용하는 '복수법' 제정이 올바른 것인가?? 라고. 물론 이것은 수필이나 칼럼이 아닌 소설이기 때문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책에 나와있지 않다.
그럼 이제 생각해 보자. 옛 함무라비 법전에 실려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로 더 잘 알려진 '동태복수법'을 현실에 적용하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도 살면서 부당한 일, 치가 떨리는 일들을 당했었고 그럴때마다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엄밀히 말하면 범죄가 아닌 일을 당하고서도 이런 생각을 할 정도인데, 실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들이 범죄자에게 똑같은 일을 저지른다 하여도, 비난할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쉽게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피해자가 당한 일과 완전히 동일한 강도의 처벌을 누가 판단 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 살인,폭행,강도 등의 강력범죄들을 일으키는 인간들은 잃을게 없는 자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똑같은 과정을 통해 똑같은 강도의 처벌을 내린다 하여도, 그것이 과연 피해자가 당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닐까?? 또 집행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강력범죄의 복수법 집행을 국가에게 맡긴다면, 그것은 결국 나라에게 시민들을 해할 권리를 주는 것이고, 이는 사형제도가 사라져가는 이유와 모순된다. 반대로 피해자, 혹은 그 주변인들에게 이것을 맡긴다 해도, 과연 그들이 똑같은 수준의 처벌을 그들에게 직접 가하는 것이 가능할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신이 당한것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해하는것에 거부감을 가지는것이 당연하다.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또 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또, 수사가 잘못되어 엉뚱한 사람이 복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존재해 왔던 문제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복수법의 문제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법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그 끝이 공허하다는 말이 있다곤 하지만 고통과 억울함 속에 살 바에는 기왕이면 내 소중한 사람들, 혹은 나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갚아주고 공허해 지는게 낫지 않겠는가?? 여기서는 냉정히, 근본적으로 현대 국가에서 왜 지금과 같은 처벌 방식들을 고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징역, 벌금, 금고 등의 처벌 방식들이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사회 질서 유지' 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회는 크게는 나라가 될 수 있고, 작게는 사람들의 소모임이 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에게는 잔인하게 들릴수 있는 것인데, 결국 '사회 질서 유지' 라는 말은 개인보다는 사회가 더 우선으로 여겨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단 범죄가 저질러진 이상,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 금융범죄나 사기 같은 경우에는 동일 금액 변상, 혹은 재산 몰수를 통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 주는것이 가능할 테지만, 물리적인 피해가 일어나는 강력 범죄는 동일한 형태로 가해자에게 되갚아 주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위에 말했듯이, 누가 그것을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고, 그 판단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징역과 벌금등의 처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실제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그 사람을 사회에서 축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감옥에 가둬둔 상태로 교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결국, 현대 국가들이 강력 범죄의 가해자들에게 가하는 처벌은 처벌 그 자체 보다는 사회의 질서를 위한 예방과 교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에게는 참 잔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풀어 말하면, '너나 너 주변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지만, 사회 질서를 위한 일이니까 네가 참아라' 라고 하는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일 테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나는 지금 국가의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에게 시민을 해할 권리를 줄 수 없다고 피해자들에게 복수를 허용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국가적으로 허용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이는 질서를 흐뜨러트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강력범죄의 가해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이 행한것을 똑같이 보복당한다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미국은 형량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강하고,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주가 있음에도 강력범죄 발생율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이 국가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를 만들면, 가해자들이 줄어들기보다는 피해자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것이 내 생각이다.
항상 사회에는 여러 범죄들이 존재해 왔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 처벌, 개인적인 복수의 합법화에 대한 목소리도 덩달아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인간의 폭력을 금지하고, 국가에 의한 제제만을 허용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 초기의 법전들에서 나타나는 '동태복수법' 들이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처벌 형태가 자리잡은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진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어난 범죄에 집중해 개개인의 복수를 허용하는 대신,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을 최대한 교화시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를 운영하는 최적의 방식이다' 라는 것이 수많은 세월의 시행착오 끝에 내려진 결론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가해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한 냉정한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이는 내가 아직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보지 못해서 할 수 있을 뿐인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다. 또 나는 지금의 방식이 최선이라 생각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수많은 고민 끝에, 발전이 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최대한 올바른 방향을 통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의 눈과 이를 앗아간 자의 눈을 파내고 이를 부러뜨려 그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달래 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타인의 눈과 이를 앗아갈 수 없게 되어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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