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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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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469회 작성일 23-07-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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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폴 칼라니티-

 

    생의 시간이 다하여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다가오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또한 당장 벌어질 일도 아니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기 일쑤이며,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기대 수명에 가깝게 살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렇다치면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50년 넘게 살 날이 남은 셈이다. 각자의 인생 계획도 거기에 맞게 설계하기 마련인데, 바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계획 안에 내가 젊은 날에 요절할 가능성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러다 애써 외면하던 죽음의 그림자를 목도하는 순간, 삶은 불확실해지고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오며 방향을 잃어버린다. 계획없이 불쑥 내 삶에 들어오는 죽음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뭉개버리고 당연한 듯 1달, 1년, 10년을 계획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려준다. 언제나 죽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살아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진리이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생활의 끝이 있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있고, 가끔은 그것이 지친 일상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도 하기에 나는 종종 죽음이나 극한 상황에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콘텐츠를 보는 편이다. 이 책 ‘숨결이 바람될 때’ 는 내가 지금까지 읽어 온 그런 류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으로, 36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어린 딸과 의사인 아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의 회고록이다. 그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생사를 넘나드는 공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의학대학원을 거쳐 레지던트 마지막 년차를 지내던 중,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절박한 심정으로 평소 그가 느끼던 인생과 죽음과 도덕의 문제를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으로 기술하였다. ‘숨결이 바람될 때’ 라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뜻하는 은유적인 제목에서부터 저자가 얼마나 삶과 죽음에 관해 깊게 고찰하고 낸 책인지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말년병장이었을때, 진중문고로 온 책 중에 가장 읽기 편해보이는 걸 집어들었고, 그게 바로 이 책이었다.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은 걸 보면 당시에는 전역을 앞두고,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던 때였고,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감에 책 내용이 그리 깊이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몇 달 전부터 계속된 가슴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더니, 예상치 못했던 진단을 받고, 대학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지금껏 살면서 건강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던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대학병원을 수소문해서 진료일정을 잡긴 했지만, 진료를 기다리는 기간 내내 근심,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진료를 받고 나서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후, 일주일 후 결과가 나왔다. 초기 진단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정상인 것도 아니니 지켜보자는 의사선생님의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게 안도가 되었다. 긴 순간은 아니었지만, 학위과정을 한 학기 남겨두고 만약 신체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싶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었다. 정상판정은 아니자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게 어디인가. 그 때 생각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물론 나는 죽음을 앞둔 정도는 아니라 저자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는 등의 인생의 사건들은 미래가 한참 남아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예고없이 다가온 죽음은 모든 미래 계획을 허망하게 만든다. 저자 역시도 레지던트 마지막 년차에 여러 대학에서 러브콜을 받던 촉망받는 신경외과의였다. 미래를 위해 10년 넘게 고생해왔는데 그 끝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과연 나는 절망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을까.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서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책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의 조금의 각색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반 년도 되지 않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기 위해 또 다시 바쁜 삶을 시작하고, 아내와 공부하느라 미뤘던 아이를 갖고, 노후에나 쓰려던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폐암 선고를 받기 전이나 후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똑같다고 말했다. 단지 폐암 선고를 받은 후에는 죽음을 더 분명히 느끼게 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측면에서는 그리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콘텐츠들이 많지만 사실 그런 질문에 진중하게 답을 내리려면 불편한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 하기에 진심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과정 중 저자의 시한부 판정부터 임종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만약 내가 대학병원에 갔을 때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어땠을지 숙고해볼 수 있었다. ‘당장 세계 여행을 떠나야하나? 못 먹어본 음식을 먹으러 다녀야하나? 스카이 다이빙이라도 뛰러가야 하나?’ 많은 물음 끝에서 결국 한정된 시간을 마주한다면 내 인생을 더 가치있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건 뭘까. 돈인가, 커리어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젊고 건강할 때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이 있지만 역시나 돌고 돌아 마지막에 남아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온다. 나의 존재가 가족, 친구, 동료, 제자, 선후배, 혹은 나를 불특정 다수 등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게 가치있는 삶이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 역시도 시한부삶에 직면하면 마찬가지로 일상을 지속하고, 주위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실제로 죽음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말에 따라 결국은 모두가 죽음을 안고 살아가기에 일상과 만나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고, 현재 순간을 의미있게 채워나가고자 한다.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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