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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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
나는 보통 읽을 책을 고를 때,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는 편이 읽는 재미도 있고, 또 할 얘기도 많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이번달에 읽을 책 선정을 진행하고 있던 때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이 '지구 끝의 온실' 이었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아 문학 비 문학을 가리지 않고 관련 책을 많이 찾아보았던 내게 SF 장르인 이 책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대상이었다. 거기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소설이라니. 그렇게 평소 한국 소설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던 장르에 이끌린 나는 '지구 끝의 온실' 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지구 끝의 온실'은 멸망한 세계가 아닌, 동물과 식물에 모두 치명적인 유해성을 띠고 있는 '더스트' 라는 미세 입자의 발생으로 인해 한번 멸망했던 인류가 다시 문명을 재건한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생물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주인공 '아영'은, 인류가 멸망했던 시대에 더스트의 피해를 막아준다는 낭설을 지니고 있던 '모스바나'라는 자생 식물이 강원도 지역에서 이상 번식을 보이자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서게 된다. 아영은 '모스바나'의 이상증식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 인류가 멸망했던 시기 모스바나를 통해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나오미'를 찾아가게 되고, 그녀에게서 과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영은 나오미의 입을 통해 과거 더스트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고, 그 세상에서 바깥의 인류와 프림 빌리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또 어떤 결말을 맞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나오미가 전해주었던 과거의 이야기들이 이윽고 아영이 살고있는 현대와 연결되고, 등장했던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하나로 모여 결국 모스바나와 더스트에 얽힌 비밀들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자연 재해, 전쟁, 바이러스의 창궐 등 모종의 이유로 인류의 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내용을 다루는 하나의 소설 장르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는 28주 후, 새벽의 저주 같은 좀비 영화들,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 그리고 최근에 나온 매드 맥스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내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각각의 작품이 모두 다른 형태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소설들은, 보편적인 인간 문명을 배경으로 하여 작중 이야기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스릴러, 추리, 로맨스, 혹은 사회 고발적인 장르의 작품들은 거의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경우에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같이 인간의 세상을 모사하거나, 혹은 인간 문명의 속에서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작품은 조금 다르다. 일단 장르 자체가 인류 멸망 이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작품 속 세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많이 동떨어져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SF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장르적 유사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SF와 많이 엮이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류 문명과 과학을 기반으로 미래를 그리느냐, 혹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그리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작가마다 세상이 멸망하게 된 원인과 멸망한 이후 세상의 모습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류 멸망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소용돌이 치는 감정들과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장르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이 장르를 좋아한다.
'지구 끝의 온실'은, 그런 관점에서 일반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한번 멸망했지만 다시 재건된 세상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다. 보통 해당 장르는 멸망한 세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예측할수 없는 인간의 행동들이 주로 묘사되기 때문에 가볍게 보기에는 힘들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은 이미 재건된 세상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어느정도 희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더스트 시대가 이미 과거라는 특성상 '생존'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중요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의 이야기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인 아영과 과거 옆집에 살았던, 어딘가 신기했던 할머니 희수의 이야기. 과거 프림 빌리지에서 마을의 리더격 역할을 했던 기계공학자 지수와 식물학자 레이첼의 이야기. 프림 빌리지의 다양했던 사람들과, 결국에 밝혀진 옆집 할머니 희수와 지수의 숨겨진 이야기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내가 느낀 감정은, 바로 그리움이었다.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주제는, 힘들었던 시절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격렬한 감정을 느끼게 한 사건들이 휘발되지 않고 오랜 기간동안 그 형체를 유지하며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즐거웠든, 힘들었든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오미, 지수, 레이첼, 그리고 희수 등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류가 멸망한 시대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의 뇌리에는 그 시대의 사건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건도 아니고, 겪은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인 아영이 실제로 존재했던 프림 빌리지로 되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정확히는, 과거의 멸망한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내가 겪었던 힘들고 즐거웠던 경험들과,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소설과 같은 창작물을 읽었을때 얻을 수 있는 이득 중 하나는, 글을 읽는 과정에서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머리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생각일 수도 있다. 심지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깃들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책을 읽는다는 것의 재밌는 점일 것이다. SF 포스트 아포칼립스 라는 장르적 특성에 흥미를 느껴 이 책을 읽은 내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그리움의 감정을 느낄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경험은, 다른 창작 매체들에서는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영화, 드라마, 만화, 그림책 등의 매체들에는 시각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연출자의 뜻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나고, 그중에서도 특히 영상 매체는 향유자가 의식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이상 연출자가 의도한 내용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문자로 이루어진 책에는 시각 정보가 거의 담겨있지 않고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자의 판단이 개입된다. 기존에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더라도, 가지각색의 사고방식과 경험을 가진 독자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지는,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많이 읽을수록 이득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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