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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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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462회 작성일 23-05-0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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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저



무지는 공포를 낳는 법이다. 

모르는 것을 티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머리를 짜서 그럴듯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거기에 바다 괴물들이 쓸모 있는 도구가 되었다.

실제로 독차지하고 싶은 보물 같은 낚시 지역이 있다면 경쟁을 막고 함부로 탐험하러 가지 못하게 무서운 바다 괴물들이 살고 있다고 겁을 주면 통하지 않겠는가? 위험한 동물들이 득실대는 바다라고 말이다.




1. 시계


 시계라는 사물이 내 앞에 놓여있을 때 그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아마 여러 생각들이 있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과의 저녁 약속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벌써 하루의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음을 깨닫고 남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더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바삐 움직이는 시계 초침을 보아도 느긋하게 별 감흥 없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시계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현재 시간을 알려준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임을 감안하면 위의 세 사람에게 있어서 시계는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시계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시침과 초침의 모양은 어떠한지, 베젤의 색깔과 광택은 어떠한지, 스트랩은 가죽인지 스테인리스인지 등 시각적인 이끌림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시계 내부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초침이 떨리는 미세한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시계의 본질과는 다소 멀어져 있으나, 누군가는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가치가 되기도 한다.

 



2. 벙어리와 앵무새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주변 세상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산만한 경향이 있다. 부모가 말을 걸어도 집중하지 못하고, 거실 벽에 걸려있는 뻐꾸기 시계에 한눈을 팔거나, 부모의 음성보다 정각을 알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에 더 큰 자극을 받는다. 대화를 한다는 것,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적절한 반응을 해야지라는 식의 훈육은 아이가 훗날 원만한 교우관계를 갖고 성장하는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자녀와 이런 식의 대화를 할 기회가 적다. 더군다나 집에 돌아와서도 일이 끊이지 않는 부모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많아서 어디서 나쁜 짓을 보고 배우거나 이상한 사람을 따라갈까봐 학교나 학원 정규 시간 외에 아이는 반드시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홀로 보낸 아이는 점차 말하는 법을 잃어갔고, 자연스럽게 침묵을 배웠다. 


 사람이 없는 정적인 집에서 심심하지 않도록 혼자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만화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아이에게 훌륭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내가 굳이 말을 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TV 속 개그맨들은 나를 즐겁게 했고, 20세기 위인들은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임을 조언해주었고, 음악은 3-4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리스너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가사를 각운에 맞춰서 리듬감있게 쏟아냈다.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장르를 불문하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노래가 참 많았는데, 이런 뻔한 사랑타령 노래에는 공감을 별로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어려서 세상을 배우고 받아들인 방식은 늘 이래왔고, 이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는 커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매우 익숙했지만, 

막상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법과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법은 많이 서툴렀다.


 다행히 학교라는 곳에서는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분명 시험문제 지문은 내 생각을 물었지만, 사실 그건 내 진짜 생각 따위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부록 <정답과 해설>에는 언제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답과 해설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당시 아이는 MP3에 저장된 수백곡이 넘는 노래 가사지를 통으로 외울 정도여서, 무언가를 암기하는 일은 아이에게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모범답안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걸 똑같이 적어내면 만점을 줬으니, 그리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말하자면, 어찌됐든 말뜻은 모르지만 인간의 음성을 똑같이 따라하면 먹이와 칭찬을 받아내는 앵무새처럼 학교라는 곳에서는 엇비슷하게 흉내만 잘해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 다시, 시계


하지만 항해를 할 때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영역까지 나아가야 한다.

경계를 넘게 해주는 재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있으면 늘 다니던 길로만 가지 않고 미지의 땅으로 방향을 틀어 용들과 신비한 괴물들과 마주할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몸을 사리며 산책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만 갈 때가 많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고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탐험하는 대신 반복하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맞추기 때문이다.



 익숙한 한 가지의 자극에 무뎌지게 되면, 결국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좁은 세계관 속에 갇혀서 홀로 쓸쓸하고 외롭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시계 장인은 고객의 모든 불평 불만을 받아들이고 해결한다. 그 고객이 오차 없는 정확성을 요구하던, 아름다움을 요구하던 말이다.

성인이 된 아이는 뒤늦게 발견한 내면의 결점을 채워서 이제라도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미처 만들 기회가 없었던 모자란 퍼즐 조각을 지금이라도 끼워넣기 위하여, 아이는 오늘도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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