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이건희 컬렉션-이중섭 특별전 <편지화, 아버지의 편지>
페이지 정보

본문
고 이중섭, 그의 이름은 시험 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해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소’와 함께 외우던 하나의 영단어와 크게 다르지 아니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이중섭 컬렉션을 관람하러 가는 나의 가장 큰 동기는 과감함 붓 터치감과 '소'라는 대상으로 나라를 빼앗긴 뼈저린 과거와 암담하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 같던 한국전쟁을 딛고 일어나는 한(韓)민족의 정서 그리고 존엄성(인내와 끈기)을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다분했다. 하지만 정작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에서 '소'를 주제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점 뿐이었다. 암기를 통해 내 머릿 속의 이중섭은 타인(人)의 삶이 아닌 '소'를 주제로 하는 작품만이 각인되어 있었기에 전시회를 구성하던 엽서화, 편지화, 은지화는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 의아함이라는 감정을 갖게 했다.
귀여운 태현이에게, 잘 지내나요?
지난번엔 엄마랑 태성이랑 태현이 셋이서 이노카시라 공원에 놀러갔다면서요.
...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열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사갈게요.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화작이라고 보기엔 그림만이 아닌 아내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담겨있는 이중섭의 편지화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는 연서(戀書)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듯한 서로 뒤엉켜있는 가족의 그림이 함께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월남 과정 중 생활고로부터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해서 그런지, 그의 편지화는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다시금 절대 이별하지 않겠다는 한 가정의 아버지의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애정이 가득차 있으면서도 사무친 감정이 담겨있는 듯한 심정이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스무살 성인의 경계에 서있던 시절에도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더군다나 어릴 적 바라본 나의 아버지는 그 어느 아버지들 보다 엄하셨던 기억이 있다. 한 남자로써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버지의 속마음은 언제나 들여다보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아버지 간의 유대관계가 두꺼워졌던 계기는 전문연과 같은 대체복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하려했던 나를, 남자는 군대는 다녀와야한다는 이유만으로 입소를 시킨 이후 한 달 여 간의 훈련소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였었다. 처음 편지를 아버지로부터 받고 덜렁 A4 용지에 아무런 볼펜으로 투박하게 적혀진 것 같은 편지지를 펼쳐보았을 때, 과연 우리 아버지 답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평소에 참아 오셨던 것들이었을까, 나를 향한 응원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훈련소 기간 동안 아버지로부터의 편지는 그 어떤 친구들 보다 더 많이 생활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 비록 대중에게 공개된 컬렉션에 ‘소’를 주제로 하는 작품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에 화가 이중섭에 대해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반 남짓 한 관람은 앞서 말한 아버지의 가늠할 수 없는 심정 중 잠시 잊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편지는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따뜻한 소통수단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과 달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서신의 주 목적이던 시대의 이중섭의 편지 속에서 그리고 스마트 폰이 보급화 되어 우편물량이 대폭 감소한 오늘 날 아버지 편지 속에서도 볼 수 있듯 편지는 오롯이 상대방을 향한 농축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쓰여 굳이 이렇게 편지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더라도, 더 이상 나눌 문장이 고갈 되어 왜 쓰기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맞닥뜨리더라도, 과정이 어떠하든 서면 위에 완성된 편지는 받는 이로 하여금 읽는 순간 만큼은 마음이 동할 수 있게, 잔잔한 웃음, 그리고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해준다. 그렇게 이중섭의 편지화는 여전히 마음을 나눌 줄 알지만, 익숙해져 버린 방식들로 인해 놓치고 있다는 알량한 핑계로 내 마음들을 저 밑 깊숙한 곳에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곧 가정의 달인 5월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지금, 훈련소에 있던 나에게 아버지도 그러셨 듯, 아직 내 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데 서투를 수 있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든다. 무뚝뚝하고 말 수 없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색해왔지만, 다가오는 8일 나도 펜을 들어 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볼까 한다.
- 이전글ESG 장기전에 대비하라 23.05.08
- 다음글크라켄 23.05.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