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 이상
페이지 정보

본문
달아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돋아내야 할 것인가?
날개 – 이상
이규섭
소설 ‘날개’에서 이상은 자조적인 어조로 자신의 삶을 풀어낸다. 그는 매춘부 아내에게 기생하는 기둥서방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장지 하나를 사이에 끼고 부인에게 외간 남자들이 오가며 주는 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부인이 무슨 일이 하는지 알지 못하며, 또 알려 하지 않는다. 그는 왜 사람들이 아내에게 돈을 주는가? 아내는 왜 자신에게 주는가를 고민한다. 그는 그의 말마따나 이불 속에 파고들어서 여러 제목으로 연구하였을 터였다. 수 많은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쓰고 시를 쓰고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토록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걸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나 있을까? 부인이 자리를 비우고서야 볕이 드는 공간에서 아이들이나 할 법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수시로 이불로 돌아가 잠에 잠을 또 거듭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잠으로, 잠으로 도망친다. 사회와 단절이 된 채 익숙한 이불 속에서 충만함을 느낀다.
주인공이 나가서 돈 쓰는 재미를 깨닫고, 심하게 감기에 걸리던 날 아내는 주인공에게 약을 준다. 주인공은 약 기운에 취하여 잠이 든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의 서랍장에 수면제 약을 발견한다. 남자는 혼란에 빠져 집을 나선다. 그리고 이내 돌아왔을 때 ‘자신이 보지 말아야 했을 것’을 본다. 그러나 오히려 아내는 그를 물어 뜯으며 도둑질과 계집질을 하고 다니냐며 그를 헐뜯는다. 주인공은 집을 다시 나선다. 그는 현실 부정과 도피에서 벗어나 현실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무기력하던 남자의 머릿 속에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어느새 지금이 아닌 앞을 바라본다. 뚜렷한 해결책이 튀어나올리가 없으나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방황을 시작한다. 그렇게 남자는 날개를 갈구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태어나서부터 일 수 도 있고, 모종의 사건 때문일 수 도 있다. 삶은 한 번쯤 구렁텅이에 빠지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무기력해져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이불로 숨어들게 된다. 우리가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면서 답답해하듯이, 주변 사람들도 그런 때의 우리를 답답하게 쳐다볼 것이다. 생각이 많고, 머릿속으로는 온갖 일들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현실 속 자신을 들여다 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삶이 그렇다. 그러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현실이 그만큼 바라보기 비참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지만 자신의 삶에 닥친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 어떤 것들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기도 한 법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은 사회에서 고립된 외골수이거나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무기력증의 사내를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오늘날의 동네 백수들이나 히키코모리를 연상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음울하고 정적으로 그려졌으나 인간의 무기력함은 하나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버리고 마는 것,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사회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회인들에게서도 쉬이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이불 속에서, 머릿 속에서 써내려간 논문이 아니라 내딪은 한발자국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설득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실을 직시한다고 반드시 답이 있는 것도 아니요, 주사처럼 따끔하고 마는 고통이라면 애초에 도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그러했듯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면 십중팔구 먼저 마주하는 것은 극복과 성취 이전에 방황일 것이다. 방황의 예감은 사람을 다시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기에, 겨드랑이의 흔적 기관을 떠올린다. 삶의 주도권을 잠시 잃어버린 무기력함 속에서도 불현듯 마음속에 살아가려는 의지가 일렁이는 찰나에 날개가 돋아날 것 같은 그 기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 이전글이 시대, 가장 중요한 사람 23.05.08
- 다음글인간실격 23.05.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