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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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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2,996회 작성일 23-06-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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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소설은 1930년대,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미국의 남부 앨라바마 주의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주인공인 스카웃은 6살 소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녀의 이웃집에는 부 래들리라는 베일에 싸인 이웃이 살고 있다. 부 래들리는 어린 시절 패거리들과 어울리다 문제를 일으켰고, 아버지의 간절한 청원으로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살겠다는 조건 하에 재판에서 풀려나 15년 간 밖에 나오지 않고 집 안에서만 지낸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에 관련해 괴소문이 돌아 마을 사람들의 외면 속에 살아간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백인 변호사인 애티커스로, 백인 여자 메이엘라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는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한다. 재판이 진행되며 톰 로빈슨의 무죄가 입증되어 갔고, 메이엘라의 아버지 밥 유얼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하지만 마지막 배심원 판결에서 백인 배심원들은 톰 로빈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것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사회 분위기에 따른 부당한 판결이었지만, 톰 로빈슨은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다. 이 사건을 통해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은 그들의 이웃들의 잔인함과 편견을 보게 된다. 

   메이엘라의 아버지 밥 유얼은 흑인을 옹호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변호사 애티커스에 앙심을 품고 복수하겠다고 경고한다. 그의 복수심의 애티커스의 자식에게 향했다. 스카웃과 젬은 어두운 밤길에 밥 유얼에게 공격당하지만, 이를 목격한 부 래들리가 아이들을 구하고자 밥 유얼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정당방위로 생각될 수 있지만 백인을 살해한 혐의에 더해 어린 시절 문제를 일으킨 전과가 있고, 마을에서 소외된 부 래들리에게 법정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를 우려한 보안관 헥 테이트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본인의 칼에 맞아 밥 유얼이 죽었다고 사건을 무마하며 소설을 마무리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하지만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란다.”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은 흑인을 변호하는 애티커스에게 은근한 불편함을 느낀다. 마치 백인과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처럼.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티커스는 친절하게 이웃을 대하고, 재판장에서도 차분하고 논리적이게 톰 로빈슨을 변호한다. 백인 배심원에 의해 패소했을 때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비난하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지만, 싸워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기에 그는 그의 양심을 팔지 않았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 그의 신념은 그의 자녀들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현 세대에서는 바뀔 수 없지만, 다음 세대에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대하며 싸워온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앵무새는 쏘지 마라.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 채소밭에서 뭘 따먹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는다.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


   소설의 제목에서 나오는 앵무새는 흑인 톰 로빈슨을 의미한다. 그는 그저 선의로 메이엘라를 도왔고, 사건 당일에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누명을 쓴 것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은 죄책감이 없다. 해가 되지 않는 앵무새를 죽였지만, 그들에겐 그저 앵무새일 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앵무새가 존재한다. 부 래들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재판에서 풀려난 후 사회적 살인을 당했다. 15년을 두문불출하며 무관심과 흉측한 소문 속에 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이웃에게 해로운 존재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소설 중간중간 나오는 아이들을 향한 그의 선행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앵무새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하며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깝게도 그도 역시 톰 로빈슨과 같은 앵무새이기에 총에 맞지 않기 위해선 다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를 통해 작가는 흑인만이 차별의 대상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흑인을 차별했던 백인들에게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꼈던 독자들에게도, 그 역시 차별과 편견이라는 메세지를 던진 것이다.




   명사수였던 변호사 애티커스는 좋은 총과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함부로 총구를 겨누지 않았다. 그는 그가 가진 총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앵무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총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한 발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과 사격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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