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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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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4,150회 작성일 23-03-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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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김초엽

 

“유토피아(Utopia)”, 고대 그리스어의 ou (무, 없음)와 topos (= place)가 합쳐진 말이다.
직역하면 “어디에도 없는 장소”, 즉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의 사회”를 뜻한다.

유전병으로 인해 얼굴에 매우 흉측한 흉터를 가지고 있는 “릴리 다우드나”는 2035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하여, 생명과학 박사 과정의 길을 걷는 천재 과학자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돌연 자취를 감추더니, “디엔”이라는 가명으로 인간 배아를 완벽하게 디자인하는 “바이오해커”로 활동한다. 그리고는 거금을 낼 재력이 있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매우 아름답고, 똑똑하고, 유전적인 결함이 없고, 긴 수명을 가진 아기를 디자인해 주면서 사회에 “신인류”를 퍼뜨리기 시작한다.

얼굴의 흉터 때문에 스스로를 불쾌한 존재라고 여기던 릴리는, 자신과 달리 완벽한 인간들로만 세상을 채워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철학자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세상에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귀결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인간배아 디자인을 통한 “신인류”들과 개조를 받지 못한 “미개조인”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발생하여 차별이 가득한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자신이 한 일이 결국 디스토피아를 야기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 릴리는 지구 밖에 선천적으로 결함, 장애를 타고난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차별이 없는 마을을 건설한다.

이 단편소설의 제목에 있는 “순례자”라는 키워드는,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자신들이 떠나온 지구(마을 사람들은 “시초지”라고 부른다)를 찾아가보는 “순례”를 떠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 속의 서술자 “데이지”는 순례를 떠나는 아이들 중 매번, 마을로 귀환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마을이 그토록 바람직한, 차별이 없는 “유토피아”라면, 왜 그 아이들은 유토피아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고 지구에 남았는가? 그렇게 데이지는 문지기에게 졸라서 마을을 설립한 릴리의 딸인 “올리브”의 기록을 열람하게 된다.

“소피,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적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본문 中

언젠가 <사랑의 담론>이라는 교양 수업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atopos (“place”의 반대 개념. 즉 존재하는 장소가 아닌 것)’ 의 성질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는 공간은 topos, 우리가 실존하는 세상이기에, 끊임없이 붕괴를 겪고, 아픔을 겪게 된다.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해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윤종신의 <오르막길>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마치 완벽함만을 추구하다가 후회하고 지구 밖 세상을 건설한 릴리가 깨달았듯이, 행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무언가를 쫓아서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Atopos가 topos로 내려오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복합적이고, 어렵고, 그렇기에 재미있다. 단순히 그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뿐만이 아닌, 인생의 긴 여정에서 세상 풍파에 맞서면서 서로를 의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밀리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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