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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말하다 - 팀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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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939회 작성일 23-03-0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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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말하다

팀켈러


  지난달, 2022년 우리나라의 출산율 통계가 발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이미 세계 최저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여겨졌지만 2022년에는 기존의 0.84보다도 더 낮은 0.78이라는 유래없는 출산율이 나왔습니다. 이 값이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낮은 값이었기에, 해당 소식은 여러 나라의 외신에서도 조명이 될 정도였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출산은 커녕 결혼조차도 잘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30대 남성의 절반 이상인 50.8%가 미혼이며, 이 수치는 매년 1.4%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2002년 20대 모(母) 출생아 수는 33만명이었으나 2022년에는 4만 5천명으로 20년간 20대 어머니의 감소율은 무려 86%에 도달할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2019년 11월부터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떨어지는 혼인율과 출산율 문제에 손을 놓고만 있다면, 언젠가 우리는 한 나라의 자연 소멸을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혼인율과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없이 높아지는 집값과 물가에 비교하여 크게 오르지 않는 임금

2) 인터넷 보급과 신기술을 통한 성욕/연애욕의 대리만족

3) 혼인과 출산에 의한 경력단절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

4) 장기화된 불황과 저성장으로 인해 청년층에게 부여된 과잉경쟁


  이외에도 대한민국의 결혼과 출산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분석이 제시되고 있지만, 사실 저출산과 낮은 혼인율은 한가지 원인으로 규명할 수 있을만큼 단순한 사회현상은 아닌듯 합니다. 현대의 한국사회가 분명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풍요로운 사회이기 때문에, 낮아지는 혼인율과 출산율의 주원인으로 물질의 부족을 제시하는 것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적인 문제보다는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사상적인 관념의 변화가 더 주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여유가 있을 때 이상을 쫒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당장의 입을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상을 쫒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족하나 심적으로는 여유가 충만한 사람이거나, 그저 현실을 도피하는 망상 중일 겁니다. 우리나라는 산업이 발전하고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대부분의 청년들이 이상을 꿀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직업을 통해서, 친구 관계를 통해서, 취미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향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상은 다른 어떤 이상보다도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상적인 결혼을 위해 배우자의 가치관과 종교가 같아야하고, 키와 몸매를 따지며, 학력과 경력을 평가하고, 직업은 어떤지 소유 자본을 얼마인지 비교하고, 가정환경과 가문의 재력도 따지고, 취미는 자신과 같아야하며, 말투도 유머도 잘 맞아야하고, 생활습관과 잠패턴도 고려합니다. 심지어는 관계를 맺을 때의 궁합까지도 먼저 비교해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니,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잣대가 이상하리만큼 높아진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배우자상에서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배우자가 결혼 전의 자기 삶을 건드리면 안되다는 점입니다. 결혼한 뒤에도 자신이 하던 일에는 동일하게 집중하고 싶고, 자기가 좋아하던 취미 생활도 유지해야하며, 자신이 살아오던 삶의 패턴에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결혼은 두명의 다른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그런 갈등의 과정을 겪는 것이 너무도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낮아지는 혼인율과 반비례하게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높아져만 가는 것이 아닐까요? 팀켈러가 '결혼을 말하다'를 통해 알려주는 결혼은 신비는, 결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며, 결혼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나 자신또한 완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을 알아가고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젊은 남녀의 불타는 감정, 즉 애로스는 사랑의 겉할기와 가깝습니다. 부부는 그런 불타는 감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고난을 함께 겪으며 동지애(스테르고)를 경험하고, 함께 놀고 기뻐하며 우정(필레오)을 쌓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법(아가페)를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가페'란 성경에서 나와 널리 퍼진 단어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더 나아가면 하나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1서 4장 16절 -


  그래서 성경은 결혼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을 스스로 경험함을 통해 깨닫게 해주는 교사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에베소서 5장 31~32절 -


  어쩌면 사람들이 결혼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결혼이 사실은 하나님으로 향하는 통로였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만약에 결혼이 우리가 아직 잘 모르던 사랑을 배워가고 경험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분명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고통이 없이 배우는 것은 없기 때문이죠. 내가 알던 사랑에 잘못된 오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다보면 새로운 사랑의 정의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완전한 결혼을 통해 완전한 나의 삶이 안정화되길 원하지만, 사실 결혼은 불완전한 두사람이 만나 완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불안정하고 힘든 여정입니다. 하지만 평생토록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사랑의 참 뜻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까지 이해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요?


  저는 진정한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손을 잡으면 전기가 통하는 수준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정말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나의 연약한 부분을 고치고 잘못된 부분은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비록 결혼을 앞둔 지금의 저는 미약하고 모르는 것 투정이인 젊디 젊은 청년이지만, 수십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깨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거쳐 배우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이 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없는 이 시대에 함께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배워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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