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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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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965회 작성일 23-03-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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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라이프

사사 료코

 

 죽음을 소재로 하는 책, 영화들은 대게 삶과 죽음이 서로 맞물려 공존하고 있으며, 죽음을 통해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진정으로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영생은 없고, 언젠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마주한 현실의 분주함은 삶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하루하루를 그저 견뎌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그럴 때 인생의 끝을 그리는 컨텐츠들은 방대한 우주의 역사를 스쳐 지나가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게 좋을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준다.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어서 일까. 이내 일상에 묻혀 잊혀지고, 또 다시 기억하기를 반복하겠지만, 때때로 하는 삶에 대한 사색은 확실히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이 책 ‘엔드 오브 라이프’ 역시도 오랜만에 내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그려보게 해주었다.

 

이 책은 저자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재택의료 현장을 취재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한 논픽션이다. 여기서의 재택 의료는 자택에서 종말기 의료를 받길 바라는 사람을 위해 의료진이 집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2013년 와타나베 니시가모 진료소에서 방문 간호사 모리야마를 소개 받아, 그의 곁에서 재택 의료 취재를 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37세 식도암 환자, 61세 췌장암 환자, 52세 척추 경색 환자, 42세의 위암 환자 등 여러 시한부 삶을 취재한다. 그 와중에 저자의 어머니도 의식은 있지만 전신이 마비되는 락트인 증후군을 않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2018년 재택의료를 행하는 방문 간호사였던 모리야마 후미노리는 췌장암 4기를 진단받고 그 역시 2019년에 삶을 마감한다. 재택의료의 현장에서 만난 각각의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하는지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당사자 그리고, 주변인들의 행동과 생각에서 짧은 인생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지, 어떻게 사는게 좋은 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또렷한 의식이 마비되는 몸 안에 갇혀버린 다는 뜻의 락트인 증후군은 10000명 중 1명이 걸릴까 말까한 병이다. 병에 걸려 날로 쇠약해져가는 어머니를 보며 느낀 저자의 생각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우리 엄마처럼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병에 걸리고, 담배를 피우고 과음을 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일도 있다. 엄마가 병에 걸리고 난 뒤로 나는 병을 제비뽑기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병에 걸린 이유? 그저 우연이다. 의미 따위는 없다. 그것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인간이고, 우리 작가들은 종종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가담한다. 인간은 의미 없는 불운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늘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그 우연을 편한대로 해석하고, 각자가 좋아하는 의미로 채울 뿐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의미를 찾는 생물이다. 가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그 가치가 무엇인지 방황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가치 실현을 위한 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기 한다. 시련과 고난이 있을 때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신을 추앙하고, 미신과 징크스를 만들어내 믿는 것도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죽음을 앞둔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삶이 의미 있었기를 바란다.


“사람은 병을 얻으면 그 어려움에서 뭔가 의미를 구하고 만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의미, 괴로움의 의미. 사람은 의미 없는 일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고 싶어진다. 왜 병에 걸려버렸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됐던 걸까. 내겐 다른 길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몸도 마음도 모두 맡길 수 있는 거룩한 존재를 원하게 되고, 그것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삶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라온 환경이나 보고 들어온 것들, 만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는다. 만약에 우리가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면 또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내리는 선택이 본인 의사 하나에 따라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하는 선택에 대해 집착하고, 또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을 사랑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걸 그랬어, 이렇게 하면 됐을 텐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이런 생각을 하기 십상이지만 그러지 말고 이렇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어떨까요. 후회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이 빛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끔 도와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고작 사흘이라도, 일주일이라도 인생에서는 정말 크나큰 시간일 테니까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결국 타인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같다. 아무리 돈이 많고, 원하는 걸 갖고, 하고 싶은 걸 하더라도 사람이라도 주위에 그와 함께 웃고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면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이 진짜 죽는 순간은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라는 말이 있다. 책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대다수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했다. 바다로 조개를 캐러가던지, 놀이공원을 가던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인걸 알면서도, 투약을 받고 의료진을 대동하면서까지 추억만들기를 강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은 정작 며칠도 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책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본인이 간직할 추억보다는 남겨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사이의 마지막 유대를 잇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의미를 가지길 원한다.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나는 타인의 인생에서의 조연이기도 하다. 비중이 큰 감초 역할일수도 있고,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수도 있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내 인생에만 몰입하다보면, 타인의 삶에서는 그저 엑스트라로 금새 잊혀질지도 모른다. 물론 내 삶에 집중하기에도 바쁜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손자, 아들, 친구, 동료, 선배, 후배, 제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고 함께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확실한 것은 그저 매 순간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바꿔 말한다면, 매 순간 작게 죽어가고 있다고 할까. 마음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탐욕스럽게 해야 한다. 망설임 속에서라도 내 발이 가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뎌야만 한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큰 목소리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지워져버릴 것 같다면 멈춰서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것, 그것이 종말기를 지내는 사람들이 가르쳐준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다. 적어도 나는 그들에게서 삶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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