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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화요일이고 오늘은 수요일인데, 내일도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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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817회 작성일 23-04-0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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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화요일이고 오늘은 수요일인데, 내일도 수요일이다.”

- 노성일 著 「미얀마 8요일력」 을 읽고 -

 

드쟈민(Thagya Min) 신과 브라흐마(Brahma) 신은 내기를 했다.

일주일은 7일일까, 8일일까.

인간들에게 물어본 결과, 일주일은 결국 7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기에 패배한 브라흐마 신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스스로 목을 잘랐다.

떨어진 브라흐마 신의 머리가 하늘에 닿자 새들이 모두 죽고 비가 내리지 않았다.

머리가 바다에 빠지자 물이 모두 끓어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었다.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 땅이 바싹 말라 동물들이 죽어버렸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드쟈민 신은 자신의 일곱 딸에게 부탁해,

매년 한 명씩 번갈아가며 브라흐마의 머리를 들게 했다.

그제야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의 신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 미얀마의 8요일 문화를 대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월화수목금토일' 대신 그들에게는 '월화수수목금토일', 정확히는 수요일 정오를 기준으로 오전일과 오후일(라후, Rahu)로 나누는 '월화수_라후_목금토일' 이라는 요일이 존재한다. 라후는 힌두교 창조 신화에 나오는 악신(惡神)으로, 영생의 약을 탐하다 해와 달의 신의 고발로 인해 힌두교의 삼주신(三主神) 중 하나인 비슈누에게 목이 잘렸다. 이후 해와 달에 앙심을 품어, 잘린 그의 목이 가끔 해와 달을 삼키는 탓에 일식과 월식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처럼 미얀마 사람들은 전 세계 유일무이한 ‘8요일’의 문화에 익숙해 있고, 불교 사원에 가보면 이 8요일이 적힌 작은 제단이 있어 사람들은 각자 태어난 요일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몇월 몇일에 태어났냐고 묻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무슨 요일에 태어났는지를 묻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일 정도이다.


 수요일을 2개로 쪼갠다. 12시간짜리 요일 2개 때문에 일주일이 8요일이 된다. 이러한 미얀마의 문화가 웃기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가두는 시간선(時間線)에 제대로 지배당한 것이다.


 그레고리력은 인류의 시간 기록을 집대성한 결과이다. 동시에 2000년 전 정해진 로마의 시간선이 지금까지도 지구의 시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놀랄 만하다. 매년 우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Happy new year !”를 외치며, 카이사르가 선포한 그 날을 새해로 맞이한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그의 율리우스력은 공동체가 같은 시간의 틀을 공유한다는 것 이면에 로마 제국이 정복한 곳에서 통치자의 효율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 있다. 중세의 주일은 가톨릭 교회가 정기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시간을 지배하는 날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기초로 만들어진 국제표준시는 영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세계가 근대 산업화 시기의 효율적이고 빠른 소통을 위해 형성한 구조의 결과물이다.


 미얀마의 전통에 따르면 태어난 요일과 시간에 따라 이름과 운명, 인생의 궤적이 정해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역술인 또는 점성학자를 찾아가 아기의 출생정보를 알려주고 운명이 적힌 팜잎(Palm)을 받아온다. 이 팜잎은 짜다(Zata) 라고 불리는데, 일종의 출생증명서이다. 여기에는 아기가 태어난 순간 천체의 위치와 살아가면서 마주할 운명을 나이별로 점쳐 새겨두었다. 짜다가 타인에게 노출될 경우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릴 때는 부모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성인이 되면 스스로 안전한 곳에 보관한다. 그리고 삶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짜다는 불에 태워 보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짜다는, 누구보다 점성술에 의해 정해진 운명을 믿는 미얀마인들의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열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나의 운명은 결국 죽을 때까지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살아가며 만드는 모든 순간을 ‘운명’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그저 믿음의 지지대 역할만 해줄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기쁘거나 슬픈 순간도, 편안하거나 힘든 그 모든 순간도 정말 내 삶에 있어야 하는 순간이 맞는지. 할 수만 있다면 짜다를 꺼내 차라리 운명이기를 혹은 내가 잘못 느낀 것이기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모여 그렇게 하나의 인생을 엮어 갈 뿐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은 어제의 화요일에도 오늘의 수요일에도 주저앉거나 아파하지 말았으면. 그 모든 슬픔과 후회는 끝끝내 열어보지 못할 운명의 짐으로 짊어지우고 내일이 수요일이건 목요일이건, 그저 당신이 만드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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