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인공 지능에 대한 단상. - <AI시대 바둑을 파헤친다! 최강전투>를 읽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973회 작성일 23-04-09 15:55

본문

바둑, 사실 나에겐 굉장히 애증의 단어다. 프로 기사 입단을 목표로 10대의 절반을 바쳤지만, 나는 바둑을 빨리 배웠을 뿐 프로 기사 입단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재능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첫 번째의 좌절이기 때문이리라. 바둑 관련해서 지금와서 내게 남은 것은 한국기원 공인 아마 단증과 (아주 높지는 않다), 그래도 바둑을 둘 줄 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기력 정도일 듯 하다. 

인공지능, CIM, 뉴로모픽 등이 연구의 메인 트렌드를 자리잡고 있는 요즈음, 논문이나 세미나 등에서 지겹도록 많이 접해봤을 단어가 인공지능 바둑 “알파고”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알파고는, 바둑을 알거나 실제로 두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상 이상의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약간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진공관 기반의 컴퓨터만 사용하던 사람들이 트랜지스터를 접했을 때의 심정을 생각하면 조금 더 와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알파고의 등장은 인간이 바둑을 두기 시작한 이래 근 몇천 년 쌓아온 바둑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1a4ff2ca18b960eb8915ce02c6fcb762_1681023246_264.png

위의 그림에서 왼쪽 바둑판을 보면, 좌하귀 (좌측 아래의 모퉁이)의 돌 진행은 바둑에 처음 입문했을 때 가장 먼저 배우던 이른바 “기본 중의 기본 정석(흑과 백이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정형화된 진행)”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 정석을, 백돌 입장에서는 절대 두어서는 안되는 진행이라고 말한다. 좌하귀에 백이 먼저 착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백보다 흑이 더 승률이 높은 진행이라는 것. 알파고의 등장 이후, 프로 기사들은 물론 어느 정도 둘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바둑 경기에서 이제 해당 정석은 완전히 사장되어 버렸다.

한편, 오른쪽 바둑판에서는 좌하귀를 보면 흑이 바로 삼삼 침입 (흑이 두어간 자리는 3x3 쪽에 위치했다는 뜻으로 “삼삼”이라고 하며, 이러한 착점을 흑이 백에게 “삼삼 칩입”을 했다고 말한다)을 두었다.

1a4ff2ca18b960eb8915ce02c6fcb762_1681023267_4316.png
 

그러나, 이러한 삼삼 침입은 이후 위의 왼쪽 그림처럼 지금까지 “정석 진행”이라고 여겨진 진행으로 흘러가면, 흑에게 최대 10집 정도의 실리를 가져다 줌에 비해, 백에게 엄청난 위력의 외세 (중앙 쪽으로 위치한 두터움, 이후 중반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위력을 발휘하며, 큰 집이 날 잠재력이 매우 높다.)를 형성하기 때문에 초반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알파고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사실 그러한 정설은 인간이 지금까지 정석 진행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잘못된 것이며, 사실은 위의 오른쪽 그림처럼 좌하귀는 적당히만 처리해두고 손을 뺀 다음, 빨강색 네모 자리로 하변에 벌려가는 것이 절호의 수가 된다는 것이다.

1a4ff2ca18b960eb8915ce02c6fcb762_1681023308_46.png

이후 위의 왼쪽 그림처럼 백이 해당 부분에 가일수 (보강하는 한 수를 더 둔다는 의미. 반드시 두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지금 두어야 하지 않는다면 다른 큰 자리를 선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하지 않고 예컨대 다른 곳을 둔다고 하면, 흑이 빨강색 네모 표시의 지점에 착수할 경우 왼쪽 백돌 5점이 상당히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오른쪽 그림처럼 흑돌에 다가서서 착수하는 것은, 이때 흑이 이른바 “정석 진행”을 하게 되면, 백돌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몰려 있어서 좋지 않다는 것. 알파고의 이러한 해석은 이후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지금에 와서는 “묻지마 삼삼 침입”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정형화된 포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불릴 정도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현대 바둑을 보면, 인간의 ‘고정 관념’이라는 것이 한편으로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고는 한다. 위에서 소개한 묻지마 삼삼 침입은, 사실 나도 바둑을 배우고 있을 때 무심코 두었다고 사범님께 “꿀밤”을 맞은 적이 있는 수였으니 말이다.

1a4ff2ca18b960eb8915ce02c6fcb762_1681023325_2393.png
 

그렇다고 인공 지능이 무조건 왕도라는 것 역시 위험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알파고가 직접 보여주었다. 위 그림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제 4국의 문제의 장면이다. 빨강색 네모 표시된 백의 착수 지점은 알파고를 무너뜨린, 이세돌 9단의 “신의 한수 78수”라고 불리면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수. 그런데 이 수, 사실 제대로 흑이 대처했다면 안되는 수라는 것이 이후 바둑 프로 기사들의 검토를 통해서 밝혀졌다. 흑(알파고)이 올바르게 응수했다면, 백(이세돌)에게 무난히 이기는 그림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 수 이후 이른바 “떡수”를 남발하다가 결국 승률이 20% 아래로 내려가면서 불계 선언을 하고 말았다. 오늘날 프로 기사들은 인공 지능을 반드시 가까이 두고 바둑을 연마하지만, 정밀한 수읽기가 요구되는 사활(돌을 죽이거나 살리는 문제) 문제 등에서는 오히려 아직까지는 인간이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위의 일련의 글은 사실 바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요새 장안의 화제인 “ChatGPT”가 뜨고 나서 나도 ChatGPT를 한번 논문 작성, 특히 Introduction을 쓰는 것에 이용해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졸업 후 교수직을 잡은 내 학부(신소재공학과) 선배가 ChatGPT를 이용해서 논문을 써 보려고 했는데 겉으로만 그럴싸한 글을 쓸 뿐 실제로 맞는 이야기나 알맞은 레퍼런스를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후기를 듣고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바로 그 생각은 접었다.

인공 지능의 무서운 발달은, 확실히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아이템을 선사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국 사용하는 인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두는 수는 얼핏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수가 많다. 충분히 기력이 있는 상태여야 비로소 그 수의 의미가 보이는 것이다. 이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당 분야에 있어서 사용자의 지식과 생각하는 깊이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유용한 툴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명심하고, 자기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공 지능이 지금보다 더 발달했을 미래의 순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