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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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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2,519회 작성일 23-04-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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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진실  

- 이꽃님의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고 -




  혹시 '티아라'라는 이름의 아이돌 그룹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티아라는, 한때 여러 히트곡들을 내며 많은 팬들을 보유했던 아이돌 그룹이었지만, 한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티아라의 멤버 중 한명이었던 화영을 둘러싼 왕따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또한 지금처럼 사람들이 학교폭력에 많은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고, 그런 사회상을 반영한듯한 기자들의 수많은 기사와,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한번쯤은 노래를 들어봤을 유명 아이돌 그룹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화영을 둘러싼 이 왕따논란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들을 비난하고 매장하였던 사람들의 수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의 노선영 왕따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당시 올림픽 여자 팀추월 국가대표로 출전한 노선영을 같은 팀이었던 김보름,박지우 선수가 왕따시켰다는 논란이다. 당시에, 노선영 선수의 따돌림을 암시하는 듯한 인터뷰와, 김보름 선수의 약간은 건방진듯한 언동으로 인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또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보름 선수는 노선영에게 왕따 사건 주동 및 폭언과 욕설을 내용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였고, 사법부에서는 노선영의 폭언 및 욕설 행위를 사실로 인정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실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선별적으로 전달된 정보들과, 자신들이 살아온 경험에 따른 판단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스토리를 구상하여,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이 책 '죽이고 싶은 아이'는 주인공인 '주연'과 '서은' 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이런 사실과 진실의 왜곡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들에 대한 아무 설명 없이 '서은'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서은의 절친한 친구라 '알려진' 주연이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3인칭 시점의 화자를 통해 전달하기 보다는 주연과 서은을 평소부터 알고있던 주변 목격자들을 통해 전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공 '주연'은 누구나 부러워할 모범생이다. 예쁘장한 외모에, 성적도 반에서 상위권인 데다가 집안도 유복하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서은'은 친구도 별로 없으며, 외모도 평범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둘은 항상 붙어다니던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둘은 친구가 아닌 주인과 노예 관계에 가까우며 서은이 주연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는 한편 다른 사람은, 주연이 평소부터 서은에게 비싼 음식과 옷을 사줄 정도로 잘 챙겨주던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연을 질투하던 누군가는, 주연은 서은을 죽일만한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며, 자신의 발언이 주연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기꺼이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한다. 평소에 주연, 서은과 자주 마주치던 학교의 수위 아저씨는, 그녀들이 항상 자신에게 음료수를 사줄 정도로 착한 아이들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들이 내면에서 바라는 주연과 서은의 모습들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이 사건은, 맛있는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들은 인터뷰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편집하여 주연을 친구를 죽인 악마, 서은을 그저 착하고 불쌍한 피해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작중 묘사된 주연의 모습은 악마와는 영 동떨어져 있다. 친구가 죽었다고 슬퍼하며, 사람들의 분노를 견디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여학생일 뿐이다. 서은을 괴롭혔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어느정도 사실인것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왕따사건은 자신의 정의감을 표출할 좋은 먹잇감이었고, 자연스레 주연이 서은을 죽인 악마고, 서은은 무고한 피해자라는 기자들의 말을 기정사실화 하여 주연의 처벌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결국, 재판에서 새로이 등장한 증인이 서은이 죽던 날, 주연이 그 장소에 있었노라는 증언을 하게되고, 주연을 변호해 주려 하던 변호사마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사건의 전말은, 결국 마지막에 밝혀진다. 서은이 죽던 그날, 주연과 서은은 큰 다툼을 하게된다. 뉴스에서 착한 사람으로만 그려졌던 소연이 사실 부잣집 아가씨였던 주연을 이용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화가 치밀어 벽돌을 집어든 주연은, 차마 벽돌로 친구를 내리치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짐을 챙기러 들렸던 교실이 두사람이 다툼을 했던 학교 뒷편의 윗쪽이었고, 창문 너머로 가만히 서있던 서은을 본 주연은 벽돌을 서은에게 던지려다 그만두고 창틀에 놓아두고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연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언을 했던 마지막에 등장한 목격자이다. 그는, 주연이 바라보던 창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다 실수로 벽돌을 쳐서 창문 아래로 떨어트리게 되고, 그 눈먼 벽돌에 맞아 서은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서은을 죽인 진짜 범인인 목격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근데요, 하느님. 하느님은 지주연이 한 말 믿으셨어요? 전 그게 진짜 궁금해요." 마치 독자에게 당신은 정말 주연이 범인이 아닌것을 믿었냐고 묻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속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들은 너무나 많다. 인터넷에서 단순한 정보 하나를 찾고싶어도, 수십 수만가지의 검색결과가 우리를 반겨준다. 길을 가다가도, 가게의 간판들, 버스에 부착된 광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 들이 항상 우리의 눈과 뇌를 침범한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가 쓸모있지는 않다. 우리가 진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그 수십 수만가지의 쓰레기들 속에서 빛나는 보석 하나를 찾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의 바다, 혹은 정보의 쓰레기 속에서 사람들의 눈과 귀는 멀고 있다. 언론들은 진실에 그리 관심이 있지는 않은듯 하다. 단지 정보를 어떻게 가공해서 어떤 맛으로 팔아야,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많이 먹어줄지를 고민할 뿐이다. 그리고 언론들은, 권력자들과 함께 이러한 정보화 시류에 편승하며 등에 날개를 단 듯 하다. 옛날 권력자들은, 정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교육을 막고, 진실을 숨겨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대항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진보된 정보화 기술들은, 완벽한 정보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권력자들은 정보를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범람시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나무를 숨기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로 중요한 진실들을 수많은 쓰레기 정보들 속에 꼭꼭 감추고 있다. 그들은, 언론과 힘을 합쳐 정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선별하고, 또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가공하여 세상에 풀어놓는다. 이러한 정보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것들에 가려진 중요한 진실들을 놓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가공된 사실들에 비해 진실은 의외로 싱거우니까. 어떤 유력자의 비리가 밝혀지면, 뉴스에는 귀신같이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 사건이 도배된다. 그리고 선거철이 되면, 기자들이 출마한 후보들의 아득히 먼 과거의 과오들을 떠벌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평소에 잘나가는게 고까웠던 연예인들을 욕하고, 자신의 반대편 진영에 서있는 정치가를 실각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뿐. '죽이고 싶은 아이' 라는 제목에서의 주어가 '주연' 인지, 혹은 주변 사람들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보다 선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다. 그리고, 어느때보다도 자신만의 주관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마음속에 굳은 심지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은, 정보의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 한가운데 표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진실이라는 섬에 당도하는것을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정보의 파도에 이리저리 쓸려다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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