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 윌리엄 폴 영
페이지 정보

본문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가장 비극적인 일은 부모가 자식을 잃는 일이겠지요. 저는 살면서 단 한번, 부모가 자식의 장례를 치루는 상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롭고 비통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가 흘리는 눈물은 그 진동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하는 무거움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부르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고 합니다. 언어로써 그 슬픔을 모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소설 '오두막'의 주인공 맥킨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상실을 경험하였습니다. 살인자에 의해 사랑하는 막내 딸 미시를 잃은 맥킨지는 '그날' 이후 모든 의욕과 감정을 잃어버린채 죽은 것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맥킨지는 '파파'라는 수신인으로부터 살인이 일어났던 판잣집으로 찾아오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를 따라 판잣집에 찾아온 맥킨지를 기다리던 것은 미시를 죽인 범인도 아니고, 범인을 아는 증인도 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흑인 여성(파파)으로 묘사된 성부 하나님과 아랍계 남자로 묘사된 성자 하나님, 아시아계 여성(사라유)으로 묘사된 성령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맥킨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결국 그의 상처조차 치유됨을 경험합니다.
맥킨지는 파파에게 질문이 참 많았습니다. 왜 파파는 세상에 이토록 많은 아픔이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셨는지. 왜 파파는 모든 악인들을 벌하지 않으시는지. 그리고 왜 파파는 미시가 죽임 당하도록 내버려두셨는지. 맥킨지의 쏟아지는 질문 앞에 파파는 사건의 책임을 찾아 심판하고 싶어하는 맥킨지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맥킨지는 미시를 상실한 이후 그 끔찍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찾으려 했습니다. 미시를 납치해간 살인자와 그 살인자를 진작에 잡지 못했던 FBI. 범죄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그것이 납치임을 깨닫지 못하고 신고하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 심지어 미시가 실종되기 직전 하필 물에 빠졌던 첫째 딸 캐시와 미시를 돌보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게까지 맥킨지는 책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파를 만나고 나서는 파파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었죠. 사라유는 맥킨지에게 말했습니다. 맥킨지는 지금 신과 같은 심판자 되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세상의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모두 선과 악을 자신의 잣대로 나누는 심판자가 된다고. 그래서 세상에는 악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만약 내가 선과 악의 기준을 가르는 존재가 된다면,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이 악에 속할 수 밖에 될테니까요.
세상에는 참 상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우린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았어야 했고, 이태원 참사에서도, 세계를 강타한 극단 한파에서도, 심지어 최근에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에서도 우리는 수 많은 생명의 상실을 목도했습니다. 이러한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우리는 책임자를 찾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가? 이러한 참사는 누구의 책임인가?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이며 기후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은 어느 나라인가? 어쩌면 우리는 큰 슬픔을 잊기 위해 어떻게든 책임자를 찾아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혹여나 나에게도 있었을지 모르는 책임을 다 떠넘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