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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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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3,306회 작성일 23-03-0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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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세계국의 표어,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


소설 속의 시대는 약 500년 후 미래,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각자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보낸다. 흔히,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곳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계획 아래에서 맞춰진 틀에 의해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큰 갈등이 없는 안정적인 사회가 유지된다. 사회를 안정화 하기 위해 아이는 인공 수정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며,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나뉜다. 계급에 의해 이후의 모든 삶이 결정된다. 과학의 힘을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신체적 능력 등을 조절하고, 그 이후에도 세뇌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 양식 또한 제한한다. 이는 사회의 안정을 위한 것일 뿐, 자유의지가 없는 세상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물론이고, 종교, 음악, 문학 등의 것들 역시 공동체의 안정성에 해가 되기 때문에 금지된다. 오로지 통제를 위해 성욕과 쾌락, 그리고 소마(마약)만이 허락된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록 유토피아라기보단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현재 우리와 비슷한 생활 양식을 지닌 사람들) 중 한 명인 존은 야만인이 살던 지역에서 벗어나 '멋진 신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부모, 음악, 문학, 사랑 그리고 자유가 살아있는 야만인의 세계에 살던 존은 통치권자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 질병, 고통, 가난, 배고픔, 불안, 우울, 그리고 자유의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을 요구한다. 

작가는 마치 자유와 행복이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계급을 정하고, 본인의 계급에 만족하게 세뇌되어있는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행복하다. 이러한 행복은 단순히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욕망을 해소할 수 있다. 성욕과 오락 그리고 소마라혹 불리는 항우울제, 마약까지 사회에서 제공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한 것이다. 즉, 이 사회의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것이고, 굳이 야만인 존처럼 자유의지를 일깨워 혁명을 일으킬 필요조차 없어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논리에 뭔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사회에서의 행복, 지배층의 시각에서 정의한 행복은 1차적인 욕구의 해소이다. 본능적인 욕구를 사회가 앞장서서 만족시켜주려는 것이다. 자아실현과 같은 2차적인, 그리고 더 고차원의 욕구는 세뇌를 통해 억제했기 때문에 1차적인 욕구 해소를 통해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반면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다. 의식주라고 불리는 1차적인 욕구들이 해소되면 더 좋은 미래를 소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멋진 신세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출판되었다. 약 10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인 것이다. 이제 막 과학 기술의 발전이 시작되어, 사람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야기했던 시기일 것이다. 또한 '포드주의'라 불리는 효율적 생산을 통한 생산성 증가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인간은 기계적 부품으로 전락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작가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전체주의의 통제와 인간 소외를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작가가 생각한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인 멋진 신세계는 보다 빨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기술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의 최종 목적지가 디스토피아를 향한 것은 아닌지 고민 할 시기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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