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학교폭력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2,938회 작성일 23-03-06 23:31

본문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만약에 미래의 나의 아들, 딸이 학교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에 심사숙고하여 답 해본다면 자극적인 대답인 걸 알면서도, 원시적인 사고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누를 수 있는 것은 폭력밖에 없지 않겠나? 가해자를 어떻게든 하고 콩밥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대답을 할 것 같다. 그리고 더 글로리, 모범택시와 같은 작품들이 대중들로부터 하여금 많은 관심을 받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즌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을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1차원적인 행동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뇌가 발달하고 있으며 자아 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서의 학교 폭력은 피해자로 하여금 평생 가슴 한 켠에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게 한다. 더군다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학교라 함은 유일무이한 사회이며 그 사회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와의 유대감, 교우 관계였다. 그런데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전부라고 생각되는 하나 뿐인 공간에서 폭력을 당하고 고립이 되는 경험하게 한다. 그렇게 그 아이는 처음으로 내딛는 사회를 좌절감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좌절감은 어른이 되고 나서 마주한 새로운 사회 속에서도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있어 발목을 붙잡게 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자존감과 인생은 학교 폭력으로 인해 왜곡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폭력에 대한 사적인 제제가 법적으로 금지가 되어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폭력에 대한 복수를 대신하여 사회적인 처벌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인 체벌의 한 예로는 데뷔를 한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경우 불쾌함을 느낀 대중들로 몰매를 받는 것과 함께 불매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해자인 연예인 당사자 뿐만 아니라 기획사, 배급사 등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기에 일전에 학교 폭력을 행한 이력이 있는 가수 연습생의 데뷔를 제약하는 계약서 조항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제제는 비단 연예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대학교 진학에 대한 제제로도 확장이 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아직도 세간에 떠들썩하게 한 이슈 중 하나인 경찰청 고위직으로 임명이 된 정치인의 아들이 행한 학교 폭력에 대해 열린 학폭위에서 내려진 강제 전학이라는 처분이 그러하다. 강제 전학이라는 처분은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함으로써 피해자를 추후 일어날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있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생활 기록부에 남은 강제 전학이라는 기록은 가해자가 입시를 진행함에 불이익을 받게 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사회적인 체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 폭력이라는 이슈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까? 먼저 제도의 불완전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함께 선진국들은 인권 보장에 대해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을 공공연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인권은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처분을 피하기 위해 사용이 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가해자나 부모들이 자기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에만 집중한다. 학폭위로부터 받은 처분 그리고 민사소송으로 부터 받은 형벌은 나 혹은 내 자식의 앞날을 막을 수 있기에, 그리고 그들의 생존 문제가 걸리게 된다는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벌 수위를 줄이려고 한다. 사람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법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몸에 그리고 마음에 기록이 되어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약하게 처벌 받고 문서상으로 기록에 남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제도의 불완전성은 학교 폭력에 대해 아이들이 방조하게 할 수 밖에 없으며 폭력을 받은 학생이 신고를 하지 않게 한다.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여 처분에 불복하고 처분을 지연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걸고, 재심을 진행한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높은 부모를 만난 가해자에게 내리어지는 유리한 판결들은 아이들의 뇌리 속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무의식속에 잠식되며 자신들의 행동은 학교 폭력을 방지하는데,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행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촉법소년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유년기,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엄벌주의를 지양한다. 왜냐하면 엄벌주의는 오히려 교정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범죄자로 낙인시켜 더 심각한 잠재적 범죄자로 자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며 학생들은 개도를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개도하기 위한 소년부 판사와 보호 관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행동 없이 말로만 이상주의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되도 않는 ‘학교폭력은 xxx-xxxx’와 같은 신고 캠페인, 즉 그저 보여주기식 행정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고 무지하고 태도에 진정성이 없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코로나 생활이 점차 풀리면서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여가 생활이 다채로워지면서 2020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최근 다음과 같은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삶을 옥죄어 왔던 코로나가 풀리면서 학교폭력이 증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빨리 마스크 해제가 되기를 바라고 코로나 종식을 바래 왔겠지만 학교 폭력의 피해자 아이들에게 있어 근 3년의 코로나 기간이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니 그 기분은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학교폭력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교육부를 비롯해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려 하는 요즘, 부디 그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으로 세간의 이목에 대응하여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행정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