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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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크 쥐스킨드
이 이야기는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 있는 체스왕 ‘장’에 대한 이야기다. 장은 오랫동안 동네의 체스왕으로 불려왔고, 그럴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저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의 뤽상부르 공원에는 열 댓명 정도의 사람들이 역사적인 대국이라고 이리저리 떠들며 한 체스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두명 중 한명은 역시 ‘장’이었고, 다른 이는 파리에 살지 않고있는 듯한 행색의 젊은 이방인 이었다.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를 통해 모두는 그가 별볼일 없는 사내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심 장을 완전히 깔아뭉갤 고수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들뜬다. 장이 고개를 숙이고 패배의 쓴맛을 보는 일만 일어난다면, 지금껏 그들이 당한 패배를 한번에 갚아줄거라며 말이다.
검은 말을 쥔 낯선 젊은이가 둘 차례가 되자 일순 조용해진다. 누구도 그를 향해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저 눈치만 보며 소심하게 관찰할 뿐이다. 그는 퀸을 전진시키기 위한 희생을 몇 번 하더니 일순간 퀸을 단번에 적진 깊숙히 집어 넣는다. 체스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진행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고수의 포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사실 퀸은 지금 상대에세 어떤 실질적 위협도 주지 목하고, 그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말들을 공격하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믿는다. 이 수의 깊은 의미와 목적이 드러날 것이라고.
장은 이런 패기 넘치는 도전자에게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그는 자신만의 체스를 고집한다. 상대의 과감한 수에 어울릴만한 수가 아닌, 퀸이 돌진하는 바람에 무방비가 된 흑의 폰을 잡아먹는 수 말이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지켜온 방식이다. 어떠한 상대도 절대 방심하는 법이 없었고, 자신의 플레이를 아주 성실하게 이행했다. 이제 관중들은 더이상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분명 장이 더 좋은 체스를 두고 있음에도, 낯선 이방인을 응원하고, 이 영웅적인 행마에 하나하나 큰 의미가 숨겨져 있을거라고 말이다.
이방인은 비숍을 G7로 진출시키려고 퀸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하는데, 대체 그런 수를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이 행동에 가슴 깊이 감동한다. 이제 이방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둘 것이고, 그들은 그런 수를 하나하나 끝까지 따라갈 것이다. 그 과정이 황홀한 기쁨이든, 쓰라린 고통이든 간에. 그는 이제 그들의 영웅이고 그들은 그를 사랑한다.
장은 생각에 잠긴다. 이러한 형세라면 본인은 질 수가 없다. 하지만 왜 이 낯선 이는 수 하나하나에 자신감에 차있으며, 구경꾼들도 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가?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결국 치명상을 입은 건 흑이었고, 역시 장에게로 게임이 기운다. 젊은이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묵묵히 앉아 있다. 그러다가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이내 자신의 킹을 쓰러트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체스판에는 멋쩍은 웃음을 띈 사람들과 ‘장’만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각자의 집으로 향하고 장만이 남게 되었다. 그는 쓰러진 킹을 일으켜 세운 뒤 잡힌 기물부터 시작해 체스판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늘 그래왔던대로 전 판을 머릿속으로 복기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실수는 없었다. 단 한차례도. 그럼에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형편없는 시합을 한 것 같았다.
그 인간의 자신감과 천재성, 젊은 패기는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비쳤다. 그가 과도할 정도로 그렇게 신중하게 둔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솔직히 장은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이방인에게 경탄했고, 그와 함께 자신이 수년 전부터 그렇게 기다려온 패배를 그 인간이 최대한 강렬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맛보게 해주기를 소망했다고 말이다. 그래야 자신은 언제나 최고여야 하고, 어떤 상대든 무너뜨려야 하는 짐을 벗어 던질 수 있고, 그래야 질투로 찌든 그 망할 놈의 구경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고, 그래야 스스로 평온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장이 오늘 실제로 패배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체스를 영원히 그만두기로 마음먹는 것으로 끝난다. 장은 왜 대담하다기보단 무례하고, 멋지다기보단 재수없는 이 이방인에 이토록 정신적으로 패배했던 것일까? 도전자는 단지 고집불통에, 매너없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을 뿐이다. 반면 장은 체스에 있어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생활이 반복될수록 이미 장안에는 붕괴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권태로움에 패배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 승리한다고 해서 기쁘다기보단 부담감만 늘어났던 그의 생각에 체스를 위해 정진했던 지난 날은 퇴색되었다.
자아실현은 가장 달콤한 유형의 기쁨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그냥 열심히 산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에 매우 어려운 과정이 수반된다.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합리화 과정을 거쳐야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납득하고 얻어내고 쟁취할 수 있으며, 얻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나의 정신적 스탠스를 하나에 집중하여 진행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장처럼 난데없는, 그러나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 내가 붕괴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사과정이 마무리 되어가는 지금, 나에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전혀 없다는 것 역시 나에게 있어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조금은 섬뜩했던, 그러나 시원함을 느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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