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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크리스찬 - 김훈중 이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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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3,117회 작성일 23-01-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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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크리스찬

김훈중 이승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장 28절 -


  나는 목사님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목사님의 아들로 살면서 나는 참 많이 새 신자들을 보았다. 책임감과 중압감의 무거운 짐을 지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교회로 찾아오곤 했다. 그들이 교회에서 예배와 교제를 통해 힐링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웃음이 넘치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내가 커가면서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그가 교회에서 맡는 직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처음에 새 신자들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교회를 향한 순수한 감사를 원동력 삼아 교회에 힘을 보태고자 섬김을 시작한다. 그들의 섬김과 헌신에 다른 성도들은 박수를 쳐주고 그들의 믿음을 칭찬한다. 그런데 그들의 섬김을 지속할수록 교회는 그들에게 더 많이 섬김을 요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요청을 수락한다. 이렇게 요청과 수락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수많은 직책을 동시에 맡게 된다. 목사님 아들은 특히나 섬김 요청을 많이 받게 되고 그것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교회에서 많은 역할을 동시에 감당했어야 했다. 찬양팀 인도자, 중고등부 교사, 성경 공부 인도자, 또래 모임 리더, 캠퍼스 모임 리더 등등등... 주중에는 바쁘게 공부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일하는 삶은 반복하다 보니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 늘 부족했다. 나는 간혹 교회에서 맡은 직책들이 나에게 무거운 짐으로 주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한국 기독교인은 신앙이 성장할수록 교회사역에 매몰되는가? 하나님께서 정말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면 신앙이 성장할수록 평화와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싸가지 크리스천'의 저자 김훈중 목사님과 이승제 목사님은 책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답하는 것 같았다. 한국 기독교인이 신앙이 성장할수록 교회 사역에 매몰되는 이유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지를 찾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 성장할수록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데, 교회가 그들이 마땅히 가야 할 곳을 제시하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들은 에너지와 열정을 교회에만 쏟아부었다. 그래서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고립되고, 고립된 사회에서 만들어진 폐쇄적인 문화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진입장벽을 만들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 즉 천국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었는데,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갇혀 서로만 열심히 섬길 뿐, 세상을 섬기고 손을 뻗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앙심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전부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 교회에서는 목회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막상 세상의 다양한 직업 속에는 신앙심 좋은 그리스도인이 부족하니, 어떻게 교회가 부흥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선교사의 아들이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께서는 목회를 그만두시고 니카라과라는 중남미 나라로 선교를 가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니카라과행 비행기를 타셨고, 나와 내 동생은 선교사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과 같이 니카라과로 갔어야 했다. 선교지에 살면서 나는 다양한 선교사님들과 그들의 사역을 볼 수 있었다. 니카라과에서 수년간 지켜본 결과 나는 많은 선교사님이 그들의 사역에서 가지는 공통적인 딜레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선교사님이시든지 초창기에는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힘있게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경험한 직업과 재능을 살려서 특색있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한국에서 유치원을 운영하신 경험이 있던 분은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역을 하셨고, 음악을 전공하셨던 분은 현지인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드셨다. 근데 그렇게 특색 있는 사역을 하시던 선교사님들도 사역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희한하게도 다들 비슷한 루트를 타셨다. 선교사님들은 현지에 한국식 교회 건물을 지으셨고, 한국에서 하시던 목회의 모습 그대로를 현지에 대입하셨다. 교회가 커지고 일이 바빠지다 보니 초창기에 진행하셨던 특색있는 사역에는 관심을 주지 못하고, 그렇게 초창기 사역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교회 사역은 막상 한국과 니카라과의 문화가 맞지 않는다 보니 크게 성장하지도 못하였다. 결국 많은 선교사님은 특정한 기간을 넘어서서부터는 사역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정체를 머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선교지를 떠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의문이 있었다. 왜 한국 교회는 규모가 성장할수록 에너지를 잃는가? 선교지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개척교회들도 왜 규모가 커질수록 초창기의 열정과 에너지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른 한국교회와 똑같은 형태와 똑같은 문제를 답습하는가? '싸가지 크리스찬'에서 목회자들도 일반 성도들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적한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특색을 잃어가는 이유는 목회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지를 놓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목회자에게 준 각기 다른 재능과 경험이 있고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이용해서 사역을 진행해야 하는데, 교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 생기면서부터 목회자들은 다른 목사님들의 사역 모델을 따라 하며 전형적인 한국 교회를 만들고, 결국 자신만의 사역 모델을 잃게 된다. 김훈중 목사님과 이승제 목사님은 이런 길잃은 목회자들을 위해 그들과 상담하고 그들의 사역을 컨설팅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모든 목회자가 전형적인 교회만을 만들면 결국 사람들은 더 크고 잘 갖춰진 교회로 몰리고 대부분의 작은 교회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목회자들도 자신의 재능과 사명을 따라 자신만의 사역 모델을 만들고 뚝심 있게 사역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


  '싸가지 크리스찬'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까 고민해보았다. 먼저 든 생각은 섬김에는 감사와 기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직책을 맡고 섬기는 일은 반드시 복음으로 인한 의지와 자발적인 헌신이 필수적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로 사역을 맡아야 지치고 힘들 때도 포기하지 않고 사역을 이어가는 것이지, 단순히 타인의 시선과 희생정신으로 직책을 버티면 안 된다. 하지만 많은 교회는 섬김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희생이라는 덕목을 요구한다. 예수님의 희생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여서일까? 교회에서는 희생이라는 덕목이 미덕 중의 미덕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구원에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두가 구원을 이미 얻은 상황인데 굳이 사람의 희생을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을까?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좋은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준 재능과 상황이 다르고,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은 사역이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사역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는 사역이 인간적으로는 매력적으로 어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역할이 다르고, 그에 따라 사역의 형태도 달라져야 한다. 과학을 잘하는 사람은 과학의 필드에서 맡은 역할이 있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의 필드에서 맡은 역할이 있는 거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거리를 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핵심적이고 가까운 공동체는 1차 사역지로, 자신이 속해 있고 어느 정도 책임감은 가질 만한 공동체는 2차 사역지로, 자신의 마음에는 염두하고 있지만 당장 헌신할 필요는 없는 공동체는 3차 사역지로 나눠서 정해야 한다.


  나는 대학원생이고 연구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1차 사역지는 연구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가정이 1차 사역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애초에 기본 중의 기본이고, 실질적으로 나의 재능과 달란트에 맡게 사역한다면 그곳은 지금의 연구실이 든 이후의 연구소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연구자는 연구실에서 연구자로서 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기보단 타인의 연구를 돕고 협력하면서, 타의 귀감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연구를 하는 데에 힘을 쏟는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박사 연차가 쌓이면서 나에게 연구실에 남아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회사에 가든 학계로 가든 학생 신분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연구할 때, 과연 내가 그리스도인 연구자의 덕목을 쌓을 수 있을까? 사회적 책임감이 적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그리스도인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할 자세와 덕목을 훈련할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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