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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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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3,053회 작성일 23-02-0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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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소리 ”

- 라르스 스벤젠著 「거짓말의 철학」을 읽고 -

 

 

추운 겨울날, 누군가 살인마를 피해 내 집에 숨었고

잠시 후 살인마가 나타나 그가 죽이려던 사람의 행방을 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Er isst nicht hier.” (그는 여기서 먹지 않는다.)

하지만 살인마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나의 집을 떠났다.

“Er ist nicht hier.” (그는 여기에 없다.)

 

위의 짧은 예시 속에서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의하면 나는 살인마로부터 누군가를 구한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대표적인 철학자 칸트 (Immanuel Kant) 의 도덕법칙인 ‘정언명령 (Kategorischer Imperativ)’ 에 의하면 나는 사회에서 부도덕한 거짓말을 한 것이다.

‘isst’와 ‘ist’ 발음 유사성을 이용하여 살인마를 속일 의도가 다분하였고, 내가 숨겨준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이상 나의 말이 허위가 아닐지라도 살인자는 ‘나의 집에 살인자가 죽이려는 사람이 없음’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살인마는 요구할 권리가 없는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을 한다 해서 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거짓말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잘못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잘못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살인마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는 살인마가 진실을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내게 정직한 행동을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반면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 (Bernard Williams) 에 의하면 나는 부도덕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정의로운 수호자이다. 윌리엄스는 애초에 위의 예시에 나오는 살인마 같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 ‘자격’조차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다른 누군가의 진실을 알 자격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지라도, 그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해치려 하거나 제3자를 부당하게 해치려 할 때도 이를 막기 위해 상대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인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옳은 일일 뿐 아니라 일말의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거짓말을 하는 상대가 공공의 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살인자가 아닌 개인적 이윤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고 공공의 위해성과 무관하다면, 오로지 상대방이 진실을 알 수 있는 ‘자격’을 내가 임의로 판단하여 부당하게 진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따라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는 거짓말에 대한 칸트의 절대적 도덕성을 지키며 윌리엄스의 거짓말의 정의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한다. 그는, 거짓말은 타인을 내 의지에 봉사하도록 강제하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거짓말은 사람들을 한데 묵는 정직의 유대를 파괴하므로 폭력보다도 나쁜 수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말이 정당화되는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으며, 이는 무엇보다도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정의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통념을 숙지할 필요가 있으며, 통념상 부적절한 질문을 하면 정직한 답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과 같이 사회적으로 거짓말이 용인될 수 있는 상황과 용인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통념’으로 규정하여 이러한 통념이 올바르게 갖춰진 사회일수록 진실과 거짓말의 도덕성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진실성의 반대를 거짓말로 정의하지만, 사실 이 반대말에는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개소리’이다. 거짓말은 보통 남들이 내가 진실을 말할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에서, 내가 내심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인 반면에 개소리는 이러한 진실성 보다는 ‘진심’이 결여된 것이다. 더욱이 우스꽝스럽게도. 이 개소리는 근대 철학자들에게 말 그대로 ‘Bullshit’ 으로 분석되는 거짓말의 한 종류이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 (Harry Frankfurt) 의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을 인용하면 개소리쟁이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를 구분 짓는 핵심이다.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 모두 자신이 진실을 전달하려 애쓰는 것처럼 꾸민다. 둘의 성공은 우리를 속여 넘기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둘은 차이가 있다. 거짓말쟁이가 감추는 속내는 우리를 올바른 현실 이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자기가 거짓으로 여기는 것을 우리에게 믿게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의도를 알지 못한다. 반면 개소리쟁이가 감추는 속내는 자기 진술의 진실 가치는 그의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개소리쟁이는 자신의 진술이 그 진위 여부를 떠나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효과’에만 관심 있기 때문에, 프랭크퍼트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려는 노력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꺾기 때문”에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사회에 더 유해하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될지언정 개소리쟁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다소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다양한 거짓말과 개소리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는 개소리쟁이를 거짓말쟁이로 한 번 보호하고, 그 거짓말을 사회적 통념이 용인할 수 있는 것 ‘처럼’ 주장하며 두 번 보호하려는 사람이다. 모(某) 정치인, 모 기업인, 모 언론인. 거짓말은 당연하고,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오로지 그 발언이 가져오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효과만 노리는 개소리쟁이들이 넘쳐나는 현시점에서 특정 이익 집단이 주장하는 억지가 마치 일반적인 통념인 것처럼 유통되는 사회를 바라보며 나 자신의 진실성과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비판적이고 정의로운 사고를 지키는 것이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이바지하는 연구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지켜야 한다. 계획과 실험, 그 결과를 지식으로 전달함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거짓이 없도록 노력하고 설령 작은 하나가 거짓이 되더라도 이를 바로 잡으려는 진실성이 명확하다면 부도덕한 삶에서부터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순한 목적을 가진 거짓으로 불순한 효과를 얻으려는 개소리의 유혹에 빠진다면, 처음에는 몇 번 그 효과의 덕을 볼지라도 결국 사회에 유해한 개소리쟁이로 남게 될 뿐이다. 역사 속 수많은 철학자들과 우리의 현대 사회가 첨예한 논쟁을 감수하면서라도 결국 정의로운 거짓말쟁이는 지켜주지만, 개소리쟁이는 결코 정의로울 수도, 지켜질 수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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