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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론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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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2,740회 작성일 23-02-0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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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 ‘예술론 특강’을 듣고… -

이규섭

 

미술은 친근하면서도 난해하다. 미술을 접할 때 마다 절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눈에 자주 보이는 작품들의 친숙함에 안도할 때쯤, 그 친숙함과 완전히 대비되는 특징을 가진 작품들이 스스로를 미술이라고 주장하며 다가온다. 그 때 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미술관에 가면 나는 그림속에 어떤 대상들이 포함되어있는지, 색의 조화는 어떠한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거나 반대로 매우 파격적이다는 감상 정도에 그치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은 작가와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어떤 이유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지 알고서야 조금 여유를 가지게 되지만 여전히 이 유희 속에는 이해가 되는 부분보다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눈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함과 유려함이 미술의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이 작품을 더 미술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일까? 오늘날의 미술은 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일까? 미술은 입바른 수식들을 걷어내고 나면 투기용 상품에 그치는 것일까? 교양으로써의 미술은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지는 현학적인 지식인들의 허영심을 위한 것일까? 그러다가 어느새 괴상한 피조물 덩어리로만 보이는 것들이 이러저러한 맥락속에서 미술의 일부로 거듭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즈음 되면, 그렇지 못한 과거의 유물들의 가치가 퇴색되어 보이기 시작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모더니즘 이전의 것들은사진기술로 대체되어 버린 반쪽짜리 미술, 예술보다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한 과거의 유물에 그치게 된걸까? 한 가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을 즈음이면 다른 질문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이 미술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익숙치 않은 것을 처음 접하면 우리는 그것을 범주화 하고 정의하는 과정을 통해 쉽게 이해하려는 특성이 있다. 대부분의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답이 아주 명쾌하다면 이 정의는 분명 이후에 펼쳐질 복잡하고 드넓은 영역을 탐험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랜세월 쌓아올려진 한 분야의 경계는 모호하며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한다. 고심 끝에 하나의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이내 그 정의를 일그러트리는 반례가 나타난다. 홀로 떨어져 있으면 전혀 미술이 아닌 것만 같은 작품들(가장 대중적으로는 뒤샹의 ‘샘’이 있지만 이 것도 벌써 100년이 넘은 오래된 작품이다.)은 처음 등장할 때는 경계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미술의 범주 한복판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심해서 정했던 처음의 정의는 이제 의미가 퇴색된다.

그래서일까? 보통 이런 때 강사는 연단에서 이 질문을 던지고 여러 대답을 듣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정답을 말해줄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더니 태초의 시작점을 언급하며 은근슬쩍 강의를 시작한다. 역사적 흐름에서 우리는 각자의 생각대로 본질을 찾아나간다. 그러니 대체로 한 학문의 정의는 다음의 과정을 따른다. 어떠한 정의로 시작된 개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건에 의해서 확장되며 현재의 형태에 이르게 된 다. 미술은 분명 시각적인 형태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행위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오늘날 미술을 단순히 그렇게 부르기에는 단순히 시각적임에 의존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행위는 직관적인 표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실 미술을 교양으로 접하는데 제일 익숙한 방식은 역사에 따라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의 특징에 따라 작품들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학교에서, 또 각종 매체에서 애용하는 방식이고, 우리는 이 방식대로 고딕이니 바로크니,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식으로 한 시대에 유행하는 사조에 따라 화가들을 분류하고 그 내용을 배웠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미술을 이해하면 현대미술의 난해함 앞에서 그 방향성을 잃게 되는 문제를 맞이한다.

근 몇 년간 미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 내가 받아들인 결론은 아래 두가지다.

1)     미술을 이해함에 있어 미술사적 맥락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의 사조가 등장한 배경은 작품의 해석에 크나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고, 구구절절 설명이 아닌 한눈에 들어오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마치는 대부분의 예술품들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런 부가 정보는 필수적이다. 보이는 것만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역사적 맥락은 이후에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고유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2)     작품의 가치는 이러한 여러가지 관점에서 매겨지지만, 동시에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그 금전적 가치가 매겨진다. 미술가와 미술작품, 미술관과 관객, 그리고 판매자와 구매자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의해 미학적 관점에서 판단된 가치와 금전적 가치가 괴리를 일으키는 것, 동시에 아직 미숙한 작품 감상과 시스템에 대한 고찰이 오늘날 예술 작품의 이해와 미술의 저변 확대를 방해하는 요소다.

새로 받아들인 위 결론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라는 선입견과 함께 고전미술과 근세미술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졌다. 새로운 시도가 없는 작품은 지루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무가치 한 것이 아닌지, 오늘날 회화의 영역이 사라져 가는 것의 이유가 그 때문인 것인지. 특히 사진기의 발명이 미술의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1차원적인 관점에서 고전 미술의 수많은 작품들은 역사적, 문화적 의의 정도만 남아 있는 그저 아름다운 설치물이나 과거의 유산 정도로 전락한게 아닌지라는 의심이 피어난다. 미학적 가치는 결국 과학 기술처럼 인간에게 새로운 가치를 알게 해주는 역할이 동반될 때에만 나타나는 것이라는 가치중심적 사고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하지만 고전 미술과 근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회화의 아름다움은 분명 존재한다. 많은 회화가 사실적 묘사와 가까운 그림들을 보여주지만 색과 구도, 요소의 배치는 사실을 담아내는 것과는 또 다른 작가만의 의도라는 점이 그 중 하나다. 작가는 다양한 고뇌를 통해 작품을 창작한다. 그 요소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미적 감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면 작품의 의의는 살아난다. 단순히 처음해보는 시도라는 발명적 의의에 모든 미학적 가치가 담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미학적 관점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내놓으면서 미술과 거리가 먼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누가 먼저 깃발을 꼽았는지에 집중하며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에 작품이라 이름 붙여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 그러한 혼란은 아직도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다.

제 1강의 연사분이 말해주셨듯, 작가가 의도를 담는 행위와 해석이 그렇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작가는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달려야 하지만 평론가는 그 뒤를 좆으며 그 의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적 맥락을 만들어 나간다. 따라서 평가의 관점에서 미술은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역사성, 문화성, 미술사적 맥락성의 측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때 그 의의를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과 예술활동의 의의는 후세에만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미술 작품의 제작 의도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전체 맥락이 중요하다는 말이 새로운 의미로 와닿는다.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가 미학적인 것이 아니고, 틀을 깨부수는 것만이 미학적인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식의 영역을 자신만의 언어로 확장해야 하고, 그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창작의 고뇌를 겪는다. 그렇기에 그 방식은 너무나도 다채로울 수 있다. 깊은 사유는 결국 철학과 접점으로 이어지게 되고, 예술가들은 당대를 지배하는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미술을 이해하는데 철학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는 까닭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그에 대한 예술에 대한 회의가 논의되던 것이 벌써 50년 전이다. 철학은 그를 넘어 다음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들은 형식의 파괴와 대책 없는 문제제기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 다음을 내다보려 도전을 반복하는 예술가들이 최전선에 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넓히려는 시도가 그중 하나다. AI 기술과 메타버스와의 융합은 비단 공학의 영역에서만 유행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도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예술을 보여줄 새로운 장이 되어 주고 있다.

 

잘난 듯 떠들어댔지만 여전히 모르는 작가의 작품 앞에 선 나는 5년전, 10년전의 나와 다름없는 까막눈이다. ‘오, 그림 멋지네.’ 정도의 수준에서 괜시리 구석구석 뜯어보며 엉터리 의미를 부여해보는 정도의 실망스러운 안목은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경험으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던 입장에서 미술사의 흐름과 현대 미술의 실태를 이해하고, 이제 다시금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쌓인 또 다른 편견들을 정리하고 미술을 대하는 나름의 태도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제 진짜 미술을 경험할 차례다. 요즘 좋아하는 작가의 미술 에세이를 찾았다. 전문가가 아닌 교양인으로써 미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의 깊은 생각들과 작품에 따른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나면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미술은 여전히 난해하지만, 분명 전보다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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