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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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 줄거리
생텍쥐페리의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작은 항공우편 회사의 이야기이다. 총 관리 책임자인 리비에르, 감독관 로비노, 비행 조종사인 파비앵이 주인공들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리비에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는 강건하고 완고한, 다르게 말하면 꽉 막힌 사람이다. 직원과 사사로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며, 항상 규칙을 우선시한다.
그런 리비에르에게, 야간 비행은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 이기도 하다. 비행기가 악천후와 엔진 이상 문제로 회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종사와 기체를 내보내어 비행을 계속하여라 하였으니. 사지에서 돌아온 직원을, 그는 더욱 매몰차게 대한다. 그 죽음의 비행 속에서 너는 계속 전진 해야 했다고. 그래야 너를 두렵게 만드는 그 미지의 세계를 깨트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실수한 노인의 뺨을 때리며, 그 자리에서 해고 통지를 할 정도로 냉혈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 또한 인생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인생이란 일종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살아간다 생각한다. 그에게 사명은, 바로 야간 비행이었음이라. 항공 우편 회사의 총 책임자로써, 신속하고 배달을 제공해 주는 것이 그에게는 인생이고, 사명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단지 거추장스러운 요소였을 뿐 이였을 것이다.
2. 인간의 생명,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가치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한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듯이 행동하지요….그런데 그게 무엇일까요?”
리비에르의 신념은 조종사 파비앵의 사고로 절정에 이른다. 파비앵은 성실하고, 누구보다 비행을 사랑하는 한 청년이였다. 평소처럼 야간 비행을 하던 그 날, 갑작스러운 폭풍우가 그를 덮치고, 사망하게 된다. 홀로 남겨진 파비앵의 아내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을 고수한다. 조종사들은 출항 전, 잠시 파비앵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다. 단지 그것 뿐, 모든 일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생택쥐페리는 아마도 이런 리비에르의 삶을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지막의 작가는 라비에르를 “패배로써 승리에 가까워 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파비앵의 죽음은 리비에르에게는 패배였으며, 그 죽음을 극복하고 야간 비행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승리였다.
삶의 가치 정도는 시대상에 따라 변한다. 소설 집필 중, 작가는 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었다. 직접 군 조종사로도 활동하였다. 그런 시대상에서 리비에르의 삶은, 누구보다 존경받아야 할 상이다. 작중 말 그대로, 누구는 해야 할 일이니.
“이보게, 로비노.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어. 다만 추진력이 있는거야. 그런 힘을 창출해야 하고. 그러면 해결책은 뒤따라 오는 법이네.”
3. 현대의 리비에르와 파비앵들
“단 한번이라도 출발을 중단시켰다면, 야간비행의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를 비난할 마음 약한 사람들을 앞질러, 리비에르는 그날 밤에도 또다른 승무원을 출발시켰다.”
작가는 죽어가는 파비앵의 모습을, “아름답게” 서술해 나간다. 의무를 다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순교자 같은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파비앵의 죽음은 오히려 리비에르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해주는 계기가 됬을 뿐, 밤마다 낡은 계기판에 의존하여 하늘을 나는 조종사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어쩌면, 리비에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파비앵의 죽음을 바래왔던것인 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리비에르들이 있을 것이다. 파비앵도 마찬가지로.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파비앵을 순교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리비에르들의 신념, 이상을 위해 희생된 피해자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로 돌아와보자. 우리는 지난 50년간 마찬가지로 리비에르의 삶을 국가로부터 짊어지게 되었다. 고도 성장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단지 불을 피우기 위한 땔감이였을 뿐이다. 목표를 이루고 사그라지는 수단일 뿐. 그 시대 상 내, 목표와 과정, 둘 중 가치를 어디 둔다 하면 전자일 것이다. 그게 전 시대상의 보편성이였으니.
우리는 뉴스에서 여러가지 사고 소식을 듣는다. 최근에도 SPC 그룹의 노동자가 배합기에 질식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노동자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과 20년전만해도, 이런 일은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런 일이 언론에 이슈가 되고 아직까지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제 작가가 그 시대상에 추구했던 가치들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파비앵처럼 칠흑 같은 밤에 홀로 하늘을 거닐며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감히 고하고 싶다.
지금까지, 정말, 감사드린다고.
안전하게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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