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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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
이규섭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주말에는 요리를 해 먹는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뭐 대단한 걸 해먹을 능력도 상황도 안될뿐더러, 그저 식비나 좀 줄이고자,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골고루 먹으려는 생각에 간단히 끓여먹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음식 이름만 검색해도 레시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중적인 음식은 검증된 간편 레시피도 널려 있다. 백종원 씨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왠만한 음식에는 백종원 레시피라는 태그가 붙는 초간단 레시피가 반드시 존재한다. 가진 재료를 비교해보고 적당한 레시피를 고른다. 레시피에 맞게 정량의 음식들을 냄비에 모아서 정해진 시간동안 끓이기만 해도 한끼를 먹을 수준의 음식이 나온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줄리언 반스는 아주 시니컬하고 현학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가진 소설가라, 그가 요리책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난 주말 중고서점에 들러 표지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들고 나와 읽었다. 원제부터가 주방의 현학자(Pedant In The Kitchen)다. 선입견으로는 영국 문학의 대가 답게 안락한 소파에서 차나 마시면서, 주방에는 출입도 안 할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오랜 옛날부터 요리책을 모아가며 ‘현학자가 요리해주는 그녀’나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여 요리를 대접해온 오랜 경력의 가정요리사다. 물론 그가 책에서 고백하듯, 옛날에는 남자 아이에게 주방은 마치 금지된 공간처럼 삶에서 분리되어, 그 역시도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분명 늦깎이 요리사지만, 80살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늦깎이라는 사실은 이제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인지, 반스보다 50년이나 늦게 태어난 나 역시 주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물론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거야 어려서부터 해왔지만, 요리를 하는 일은 명절이나 김장 때 거드는 정도의 잔심부름 정도이지, 중학교 때까지 스스로 식탁을 차려 본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 들어서 볶음밥이나 해먹었으려나. 하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에 대한 흥미는 항상 있었는데, 재료를 모아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지 싶다. 마치 놀이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대학교에 와서 처음 맞이한 방학에 굳이 재료를 사다가 손반죽으로 식빵을 만들어 가족끼리 나누어 먹은 기억이 있다. 아마 그게 제대로 된 나의 첫 요리이지 않았을까?
요리의 재미와는 별개로 재료를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반스가 지적하듯, 먹고 싶은 요리를 위하여 레시피에 있는 재료를 맞추어 사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가끔 뭐라도 하나 빼먹으면 다시 장을 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잘 쓰이지도 않는 재료를 샀다가 한번의 요리 이후에 남은 잔량을 죄다 버리게 되는 불상사도 쉽사리 일어난다. 재료 뿐일까?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구들은 대부분 한 두 번 사용된 뒤에는 서랍 깊은 곳에 짱박혀 이사가기 전까지 빛 볼일이 없다. 어느 수준에서는 타협을 보아야만 한다. 설탕 대신 꿀을 넣는 다거나 된장 대신 고추장을 넣는 수준의 지나친 땜빵 재료는 용서의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타협은 꽤나 자주 이 치사한 요리사들에게 좋은 변명 거리를 제공해준다. 재료를 당신 맘대로 바꾸니까 그렇지! 쓰라는 기구를 안쓰니까 그렇지! 뒷정리는 또 오죽한가? 새로운 요리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우고나면 싱크대 가득 쌓인 식기들과 난장판이 된 식탁이 나를 기다린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덤이다. 4인 가족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에게 박수를. 그보다 더 많은 가족을 키워낸 할머니에게는 더 없는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요리와 실험은 굉장히 비슷하다. 실험 조건을 Recipe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그렇다. 둘 다 기구와 재료를 사용하여 일련의 과정(Process)을 거쳐 최종 완성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Recipe는 정확해야 한다. 조금만 재료가 달라도, 조금만 온도가 달라도, 시간이 달라도 소자는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어떤 분위기(기체의 종류와 압력의 정도)에서 진행하는지에도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공간 단위에서 매우 균일한 조건하에서 공정이 진행되어야 동일한 소자가 나올까 말까다. 장비가 달라지면 수치상 같은 조건이라도, 실제로는 다른 분위기가 되므로 소자 특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실제로 요리를 해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얼추 비슷한 맛일 뿐이지, 계량이 정확하지 않으면, 혹은 가열 기구가 달라져 온도 조건이 달라지면 맛이 달라지는 요리들이 있다. 일반 음식에서 맛이 달라지는 정도라면 디저트류는 맛과 형태가 극적으로 달라진다. 나노 사이즈에서 물리적/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소자 제작에 비해서 별거 아니어 보일지라도, 반대로 Macro-한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제어해야 하는 제과, 제빵의 조건 잡기는 만만찮은 일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그들을 파티셰라는 별도로 구분된 장르의 장인으로 만든다. 서양요리는 조건이 까다로운 음식들이 유독 많은데, 반스는 이러한 점을 지적한다. 한 꼬집, 질척해질 정도 같은 모호한 표현들로 범벅된 요리 책들을 비판하면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점을 아쉬워한다. 나아가 한 스푼, 한 티스푼과 같은 기준도 각자의 식기가 아니라, 정해진 계량 스푼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한편으로 반스는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쉬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리란 단순히 재료를 때려넣고 끓이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이렇게 또 내 주말의 일상은 철저히 부정당한다.) 전문 요리사들의 숙련도를 가지지 못한 독자에게 재료 이외의 정보가 불충분 할 수가 있다. 그들은 어련히 알아서 할 과정들이 초보자들에게는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음식을 조리하는 다양한 테크닉들을 문자나 사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과정들은 영상으로 보아도 따라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소자의 달성 스펙은 명확하고, 깐깐한 반면. 음식의 경우 그 기준을 주관에 따라 한없이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충분히 달고 짭짤한 음식은 ‘먹어줄 만’하다. 우리는 미세한 맛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맛의 정도를 정량화하여 비교할 수 없고, 애초에 그러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은 몇몇 전문가들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타협이 가능하다. 반스의 마지막 말처럼 초대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메인 요리다. 밥먹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않나. 요리를 준비하는데 전전긍긍하느라 자리를 망치느니 하나의 요리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적인 식사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요즘은 전채와 후식은 주변의 가게에 예약해두고, 메인 요리를 잘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 성공적인 초대 식사의 형태라고 한다. 작가는 그마저도 비틀어 디저트를 손수 만들고, 메인 요리는 인근의 유명한 라자냐 가게에 예약했다. 파티가 끝나고 라자냐에 감명받아 레시피를 묻는 지인 때문에 곤혹스러워 했던 후일담을 뒤로 하고 말이다.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밥 먹었니?’가 인사인 나라니 말 다했다. 그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 가장 현학적인 사람조차 이토록 관대하다. 요리란 우당탕거리고 실패해보는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시선에서 모든 요리책들은 든든한 아군이면서 동시에 허점투성이였을 것이다. 이상적인 요리란 없으니까.
살기 좋아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삶이 팍팍해지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세상이다. 유투브에는 요리와 관련된 컨텐츠 들이 산을 이룬다. ‘다 큰 어른이 무슨 파티야 파티는.’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이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뭉클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분명 그랬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가끔 지인들을 초대할 때면, 왁자지껄 몇시간을 시끄럽다가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는 휑했다. 사람들을 보내며 열어놓은 대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지친 마음으로 식기를 정리하고, 음식으로 지저분해진 상을 닦아 다시 장에 넣어 놓는다. 네 가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나서 대문을 닫는다. 그리고 감상을 나누던 시간의 따뜻함을 기억한다. 분명 피곤한 일이었지만 행복한 순간이었다.
요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이런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며,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때로는 우리 입맛대로 나름의 요리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혀를 행복하게 하고, 배를 행복하게 하고,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마음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요리책 표지나 유투브 썸네일처럼 멋들어진 요리가 아니라도 좋다. 그리고 언젠가 공을 들여 누군가에게 대접할 때가 오겠지. 확실히 가끔은 먹고 사는 일에 진심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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