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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진, 보이지 않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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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920회 작성일 22-12-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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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익숙해진 것을 새로운 시작으로 살펴보거나, 이미 적응된 상태를 애써 바꾸려 들지 않는다. 설사 바뀌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짚어내기 어렵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운전할 때 늘 보는 신호등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한국에 왜 노래방, PC방이 많은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하나의 주제를 짚어서 논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대체 왜, 높은 건물에 열광하는 것일까?"


인간이 건물을 높이 짓는 것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드러내려 했던 시도들은 사실 구약 성경에까지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다. 하늘에 닿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바벨탑 뿐 아니라 피라미드, 베르사유 궁전 등 권력을 드러내야 하는 건물들은 높고 웅장해야 했다. 일단 지어 높으면 그 상징성은 강력할 뿐 아니라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이 심화된 것은 19세기가 되어 돌과 벽돌을 쌓아올리던 방식에서 콘크리트와 철골로 조립하는 시대가 오면서부터다. 대표적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데, 경쟁 건물보다 단 1m 라도 높이기 위하여 사람이 살지 못하는 송전탑을 올리거나, 마지막에 설계 변경을 하는 눈치싸움 등 편법과 선동으로 가득한 경쟁이었다는 점은 어떠한 문서에서도 제대로 주목하여 다루어지고 있지 않아서 씁쓸하다. 게다가, 마천루 무한경쟁이 가속화되며, 멋진 조망을 누릴 소수를 위해 대다수가 사는 저층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고층 빌딩의 밀지화로 인한 조망권과 일조권의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가려지고, 태평양 너머 세계인의 눈에는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은 세련된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무대 속 맨해튼의 야경은 더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마천루는 인류가 힘든 조건과 한계를 극복하고 이룩한 도전과 승리의 역사인 동시에 그 내부의 원동력인 자격지심과 열등감, 시기심, 경쟁심, 두려움이 지배한 어둠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경쟁의 끝에는 결국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한다는 변치 않는 사실에도, 0.1초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매번 출발대를 박차고 나가는 육상 선수처럼 이미 그렇게 설정된 게임의 법칙은 도전자에게 ‘왜’라는 질문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다. 높아지는 것만큼 아래는 점점 어두워지는 현실을 백년이나 경험했건만, 우리의 시선은 저 멀리 타워의 꼭대기로만 향한다. 학습된 욕망의 환각성은 그만큼 강력하다.


서울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건물과 상업 공간이 죽기살기로 생존과 성공을 향한 강박관념만을 가지고 도시를 지배한다. 마천루가 매일 기록을 경신해봐야 승자는 계속 패자로 바뀌고, 경쟁에 끼지 못한 대부분의 시민은 어둠속에 살게 된다. 서울은 그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로 라스베이거스와 맨해튼이 되어간다. 살아남기위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사투는 결국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매트릭스 내부의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높아지기만 하고 커지기만 하는 이 끝없는 경쟁의 행군을 서울 내부의 사람들은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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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EBS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했던 "나의 집은 고시원"이라는 작품에서 소개된 파주의 한 고시원 원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처음엔 엘리트 층들이 많이 이용하던 고시원은 어느새 건설 일용직으로 근근히 먹고 사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면서, 이러한 사람들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의 실수나 불운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일 뿐이라고,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조금만 더 허리를 숙여서 보듬어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아쉬워하던 말씀. 높이 올라갈 수록 아래를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높이 올라갈 능력이 있다면 아래로 내려갈 능력도 충분히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럴 수록 우리는 높이 건물을 쌓는 와중에도 잠시라고 시간을 내어 낙오자들 또한 따뜻한 온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 정도는 만들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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