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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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레고르 잠자는 평범한,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외판원으로서, 누구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 퇴근한다. 가족들은 헌신하는 그레고르를 보며 그를 아낌없이 사랑한다. 그레고르도 가족들을 사랑한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잘 되는 것이 아닌, 가족의 빚을 모두 갚은 후 사랑하는 여동생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음악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탄하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커다란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는 자신이 변하는 순간까지도 가족을 생각하였다. 그가 갑충으로 변한 후 맨 처음 일어나서 한 일은 출근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 이였다. 그러나, 갑충으로 변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 보면 벌레 같은 끽끽 대는 소리만 들렸을 뿐만 아니라, 혐오감이 들 정도로 흉측한 외모는 그를 방 안에서만 있게 할 뿐이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와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각자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흉물스러운 벌레는 그들에게 하나의 짐 이였을 뿐이었다. 하숙인들이 방 안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 그레고르를 보고, 계약을 철회화였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레고르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레고르는 그런 가족마저 사랑하였다. 그는 가족이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그는 집 한쪽 다락방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그리고, 그레고르로 인한 고통에서 겨우 해방된 가족들은, 그의 시체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어디론가 떠나간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 변신은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해석이 가능한 책으로 유명하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해석이 있다고 봐도 할 정도로.
1. 실존주의와 “벌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는 1900년대 프랑스 및 독일 철학자들에게서 활발히 논의되었던 철학 사조이다. 이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물음에 대한 선택으로, 자신의 자아를 형성한다. 즉, 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실존주의의 기초 관념은, 기존의 관념과 상식을 철저하게 해체한다. 1900년대 초, 당시 사회는 집단 내의 개인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였다. 국가는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들을 말하였으며, 미디어 안에서는 가족 안에서의 각자의 구성원이 해야 할 관념과 상식을 끊임없이 공표하였다. 개인의 모든 활동이, 공동체의 존속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전체주의 사상이 등장한 때도 바로 이때다.
프란츠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여 버린, 그리고 변하고 난 이후의 과정을 통해 이런 관념과 사상의 불합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벌레로 변하기 전 그레고르는 누구보다 올바르고 우수한 사람이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회사를 위해 일찍 출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단순히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벌레로 변한 뒤, 그는 사회와 가정에서 철저히 배제당한다. 형태가 벌레로만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렇게 단순히 다른 형태로 껍데기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이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결국엔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당시 사회에서의 집단 내 소수에 대해 철저히 억압하고 배제되는 군상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 그레고르 잠자
“그가 일한 만큼 즉시 중개료가 들어왔으며, 그 돈을 받고 경이로워하고 행복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가 정말 좋은 시절이였는데, 그 이후 가족 전체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서 가져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가족들이 기뻐하는 일은 없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벌레로 변하고 가족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끝까지 사랑한다. 심지어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들을 위해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의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은 사회의 최전선에 나와 돈을 벌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가장이니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라는 의식이 그들에게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런 희생은 숭고하게 가족들로부터 존중받았다.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가장 이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를 통해 그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 안에 돈을 갉아먹는 골칫덩어리가 된다. 그런 그레고르르 보며 가족들은 처음에는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나, 점점 금전적으로 힘들어할수록 그를 외면하고, 독일어 원문처럼 “해충”처럼 대한다.
해충의 의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곤충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레고르는 가장으로써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그레고르 가의 “해충”이다. 가족에게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 그는 잠긴 방에서 몰래 나와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등,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족들에게 지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런 수단 자체가 가족들에게는 부담이 되며, 결국엔 그를 내버리고 죽여야 한다고 한다.
가장의 권력은 생계유지의 필요조건에서 비롯된다. 프란츠 카프카는 한 가정의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철저히 몰락하는지에 관해 서술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쓸쓸히 죽어가는 그레고르를 보여주고, 행복하게 어디론가 떠나는 가족을 교차로 보여주며, 당시 시대상에서 이런 관념에 대항하기보단 어쩔 수 없는 그 구조에 순응하고 인정하는 삶이 우선됨을 표현한다.
3.가족
“저는 이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에 오로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거에요”
그레고르 잠자는 변신 전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가 벌레로 변해버리자, 가족들은 그를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그레고르는 돈을 벌어다 주는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부장제는 점차 과거의 개념이 되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성숙해진 젠더 의식으로 인해 그 존재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후반대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젠더 문제는 기존 가부장제 내 폐단을 강하게 흔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그러나 공론화되는 과정 속, 우리는 더 이상 가족을 따뜻한 공동체의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위해 각자를 사용하게 되는, 계약적인 공간이 된다. 자조적으로 ATM이라 부르는 수많은 현대의 가장들은, 그레고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가족 내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을 때,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멀어지게 된다. 마치, 벌레처럼. 100년 전 그레고르는 다락방 안에서 쓸쓸히 죽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지금 사회에서 그레고르가 다시 “변신”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보듬어 줄 수 있을까.
“그는 가족에 대해 동정과 사랑으로 되짚어 생각해보았다. 그가 사라져야만 한다는 그의 생각이, 아마도 여동생의 생각보다 좀 더 확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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