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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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아무렴 행복이길
나는 너무나도 손쉽게 나를 미워한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이런 자기비하는 나에게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인지 쉬고 있을 때도 마음이 불편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속이 아프다 못해 쓰려온다. 이 모든 건 인생을 더 열심히 살라는 채찍질일 수도 있겠고,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오히려 내 탓으로 하는 편이 훨씬 속 편해서 일수도 있겠다.
내 인생의 변곡점에서는 특히나 나를 몰아세우고, 내 자신에게 냉담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자기 객관화를 넘어서 자기 혐오를 하면서 잘난 점보다는 못난 점을 찾아가면서 혼을 냈다. 내 자신을 좋아할 수 없는 뇌 구조에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늘 그랬듯 매일 밤 자기 전에는 항상 내 자신을 경멸하면서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자기 혐오에 금이 갈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나는 대단한 친구였고, 좋은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에서도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는데 타인의 인생에서 대단하다는 표현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도 놀라우면서도 위로가 됐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부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위로를 똑같이 전해주고 싶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함에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불행과 실패에 세상에게 분노를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냈다. 그게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그 길이 옳았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니 지금도 빛나고 있을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바라보자.
나라는 사람
‘이윤희’라는 한 사람은 나 홀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이자 언니,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동료… 등등 나는 누군가의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고, 나 또한 그들로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난 그들 때문에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 확실한 건 그들 덕에 잘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에게 아낌없이 사랑과 위로를 건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마 행운일 것이다. 내가 기쁠 때 티없이 맑은 기쁨을 선사하고, 슬플 때 가슴 절절히 울어줄 수 있음에 온 마음 바쳐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참 슬프게도 한해가 지날수록 믿을 수 있는 사람보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젠 예전처럼 내 곁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예쁘게만 보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데 난 아직도 곁에 있는 이에게 기대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실망을 한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차가워지고 공허한 마음 한 구석에는 외로움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그렇게 외로워질 때면 결국엔 사람이 고파지고, 그렇게 나의 필요로 인해 낯짝좋게 주변사람들을 찾아 떠난다.
가끔은 나의 욕심으로 내 모든 신경이 예민해질 때면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가시를 보여줄 때도 있다. 그래서 춥고 어두운 나에게 길을 잃지 말라고 손을 건네준 소중한 이들에게 겁먹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더 빳빳이 세웠다. 단지 두렵고 불안해서 보여줬던 어린 행동으로 그들의 따뜻한 손길에 가시가 박히게 할 때도 있었고, 결국에 그들을 떠나보낼 때도 있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임에도 내 주변을 채워주는 이들에게 모든 걸 쏟아내려고 한다. 그들이 떠났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는 온 진심을 다해 사랑해줄 것이다. 때로는 멍청할 정도로 그리고 순수하게 마음을 나누며,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따뜻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이 떠났을 때 내 머리속에 숨 막히도록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질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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