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실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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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실패하기
존 크럼볼츠, 라이언 바비노
최근 널리 알려진 성격유형 검사 중에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성격 유형을 4가지 지표로 구분하고, 각 지표 안에서 2개의 극이 되는 성격 중 더 가까운 쪽에 따라 해당 지표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 I (내향), E (외향) / S (감각) , N (직관) / T (사고), F (감정) / J (판단), P (인식) 로 이루어진 선택지에서 4가지 카테고리 안에서의 본인에 성격에 따라 성격 유형이 정해지며, 이때 총 16개의 성격 유형이 나올 수 있다. 나의 MBTI는 ISTJ로 내향, 감각, 사고, 판단으로 이뤄져있다. 좀더 쉽게 풀어쓰면 내향적이며, 현실적인 것을 선호하고, 감정보단 이성적인 것을 중시하며, 모든 일에 계획을 세워서 하는 편이다. MBTI 성격검사의 신빙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사람에 따라 한가지 지표안에서의 편향 정도가 천차만별인데, 칼로 무 자르듯 내향, 외향/사고, 감정을 갈라버리니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에 나는 이 검사결과가 나의 성격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ISTJ의 마지막에 있는 J (계획)성향이 두드러진 편이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부터 계획을 세우는 것을 참 좋아했다. 비록 그 계획이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나만의 마스터플랜을 거창하게 세우고 나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미 뭔가를 이룬 것처럼 뿌듯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너무 빠듯한 계획 탓에 이를 어기는 일이 빈번했고, 이 때문에 낭패를 본 경험이 많았음에도 이런 습관은 좀처럼 고치기가 어려웠다. 그 기저에는 무엇보다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성취를 위해서는 첫 단추인 계획부터 완벽해야한다고 믿었기에 계획 단계에 힘을 많이 주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잘된 경우도 더러 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실패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러한 실패의 빈도가 커졌는데, 이는 시험이라는 명확한 룰이 있는 세계에서 나와 책만 서로 씨름하면 되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험범위도, 문제도 규명되지 않은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풀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세계에서 짧은 경험으로 시뮬레이션한 나의 계획은 아무리 깊이 고민을 한다해도 시간 낭비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나,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경우 계획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더욱 그랬다. 완벽한 계획에 집착하는 습관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내심 깨닫고는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내려오던 관성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았었다. 이 책 ‘빠르게 실패하기’는 그러한 나의 오래된 관성을 돌이켜보는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Do it badly, as Fast as you can
픽사의 회장인 에드 캣멀은 픽사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것은 엉망인 상태에서 엉망이지 않은 상태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영화 제작 산업은 수천 개의 완성되지 않은 개념 사이에 몇 가지 괜찮은 아이디어가 묻혀있는 원시적인 스토리보드 몇 장에서 시작한다. 초기에는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가 셀 수 없이 많다. 애니메이션 팀은 하나의 최종 컷을 위해 수천 번의 수정을 거친다. 실패를 거듭하는 여유를 스스로 허락하면서 형편없는 아이디어는 가능한 한 빨리 내던진다. 그리고 그때서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앞선 예시는 비단 영화에만 한정되는 게 아닐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일련의 프로젝트들은 아직까지 익숙한 시험의 형태로 문제를 마주하는 일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즉 시험범위도 문제도 정답도 불분명한 상태일 것이기에 영화의 예시처럼 실패하고, 경험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이 최선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Fail Fast to Learn Fast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져서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실패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실패를 두려워서 해서도 안 되고, 또 실패를 하더라도 단지 실패로 끝나게 두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왜 실패했는지 배워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자꾸 뒷걸음질치고, 한번 실패하고 나면 거들떠도 보기 싫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연구에서도 수 많은 실패를 해보면서 예상과 왜 다른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발전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낸 인생보다 훨씬 존경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용한 삶이기도 합니다.”
-조지 버나드쇼-
책에서 말하는 ‘빠르게 실패하기’의 핵심은 너무나 간단해서 별다른 부연설명없이도 그 뜻을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알면서도 외면하고, 내가 오랜기간 살아왔던 대로 돌아가려고 했던 나이기에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수용하고, 이렇게 느낀 점을 글로써 표현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나의 사고에 변화가 생겼으리라 믿는다. 더불어 그래도 회사보다는 실패가 용인되는 학위과정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그 끝에 성취하는 경험을 통해 실패의 참 의미를 피부로 느껴볼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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