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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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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964회 작성일 22-12-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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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미술은 대중들에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현대미술과 관련된 하나의 흥미로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해당 영상은 한 유튜버가 자신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미술평론가에게 보여주고 감정가를 받는 내용이었다. 미술평론가는 그림의 출처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림의 감정가를 2~3억원으로 책정하였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과 그린것과 다를바 없는 그림에 수억의 감정가를 매긴 미술평론가를 보며 영상 댓글에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사실 대중인 우리가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에는 현대 미술의 태생적인 이유가 있다. 미술계는 현대 미술의 시작을 사실주의자였던 쿠르베나 인상주의자였던 마네로 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미술가들은 왕과 귀족의 요구와 입맛에 따라 그림을 맞춰 그려주던 아카데미아의 분위기를 떠나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그림에 담는 시도를 시작했다. 때마침 사진기의 발명으로 장면 재현의 역할을 사진에게 빼앗기면서 미술계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예술적인 표현법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결국 현대 미술은 누군가가 아름답다 정의한 것을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작가도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그림에 넣고 화자도 자유롭게 그림을 자기 감정과 생각대로 해석하는 예술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관람한 그림들


  IEDM 학회를 위해 방문한 샌프란시스코 힐튼 호텔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가 있었다. 학회장에서 거리도 멀지 않고 현대미술을 경험해보고 싶은 궁금증도 있어서 SF-MOMA를 방문하고, 몇가지 인상적인 그림은 사진을 찍어왔다.


1. Joan Brown의 Noel and Bob (1964)


  SF-MOMA에서 처음 만나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구상화가 Joan Brown이었다. 작가 설명에 적혀있던 구상화가 (Figurative painter)라는 단어를 보고 그 설명을 찾아보니 "자연이나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추상예술의 대항하여 종래의 재현적 표현을 총괄하는 개념"이라 설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Joan Brown은 현실을 재현했다고 하기에는 그 표현법이 그리 사실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물의 형태가 구분이 갈 정도로만 재현을 하였으며, 색감도 매우 원색적이었고, 표현 방식도 상당히 거칠었다. 얼마나 거친가 하니 그림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유화 물감의 굴곡이 3D로 보일 정도였다. 거친 선과 점도 있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Joan Brown은 분명 세상과 주변을 향한 강렬한 감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림 속 자신의 아들 만큼은 부드럽게 그린 것을 보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엄마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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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Gerhard Richter의 Abstraktes Bild (1992)


  붉은 색과 흰색, 녹색의 물감이 어지럽게 섞여있으면서 동시에 가로줄과 세로줄이 가지런하게 그어져 있다. Gerhard Richter의 'Abstraktes Bild'는 독일어로 '추상 이미지'라고 한다. 현대 미술은 제목을 쉽게 짓는건지 어렵게 짓는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질서가 잡히지 않는 색상과 질서가 잡혀있는 윤곽의 대비가 그림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사각형 형태의 윤곽은 그림을 마치 도심의 건물이나 도로, 창문과 같은 인공적인 물건이 보이게 만든다. 반면 흩어진 형태의 색상은 풀숲이나 노을, 안개나 비와 같은 자연적인 것들이 보이게 만든다. 작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하는 것은 도심 속 건물과 풀숲의 조화였을까, 비오는 도로 위 노을 비친 빌딩이었을까, 이 모든 것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작가 자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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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완기의 26-I-70 (1970)


  외국에 나가서 지내다보면 한국에 관련된 모든 것이 반갑게 느껴진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 있는 작가 설명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읽는 것만큼 반가운 일도 찾기 힘들 것이다. 김완기 작가의 26-I-70은 남색 바탕의 캠버스에 흰색 원이 한가득 그려져있다. 환고포증은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고 하지만, 만약 환고포증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면 식겁했을 그림이다. 그림을 바라보면서 문뜩 원이 숫자 0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는 0, 그리고 그 무존재로 한가지 덮혀버린 캠버스. 수많은 무존재가 모여 남색 캠퍼스를 온전히 가려버릴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마치 힘 없는 대중들이 모여서 한 나라를 바꿀 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대 민주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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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미술은 난해하다. 하지만 난해하다는 표현은 사실 현대 미술을 조롱하거나 비꼬는 표현이 아니다.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복제하거나 간혹 약간의 상상력만을 더 하던 기존의 고전 미술은 우리의 시야를 바탕으로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에 직관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직관적인 고전 미술은 우리에게 그림의 주제와 의미를 강요하고, 그림을 보는 우리도 작가가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제한적인 예술적 표현에 머무른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해석에 극히 자유롭다. 작가가 특정한 의도를 담아서 작품을 그렸을 수도 있지만, 결국 현대 미술에서는 그 해석을 청중의 몫으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사실 연구와 현대 미술에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기존의 해석을 벗어나 새로운 해석과 개념을 제시하려는 현대 미술처럼 연구도 기존의 결과와 해석을 뛰어넘는 이론과 결과를 제시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 미술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것처럼, 연구도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자도 예술가도 모두 무언가를 창조하는 창조자들이다. 세상에 아직 없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알고 이해하는 정보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보를 외우는 것을 넘어 진리를 관통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예술가에게는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고, 엔지니어에게는 엔지니어의 감, 즉 engineer's mind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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