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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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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26-05-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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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랫동안 감정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그것을 남에게 표출하거나 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슬픔도 불안도 분노도 어떠한 감정이라도 결국 내 안에서 생겨난 것이니, 내 안에서 조용히 끝나야 한다고 믿었을뿐더러, 그 생각의 밑바닥에 어떤 자존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감정을 내비치는 일을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겼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말끝을 삼켜 말수를 줄이고, 흐트러진 표정을 애써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감정은 생각처럼 쉽사리 갇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을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보일지라도,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오래 눌러 둔 감정은 더 깊은 곳에 침전되었다가 어느 순간 낯선 표정으로 다시 떠올랐다. 마치 꽉 닫아 둔 탄산수의 기포가 작은 틈을 찾아 새어 나오듯, 눌러 둔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행동과 말투, 눈빛과 침묵 속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정은 숨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나를 대신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 슬픔, 분노, 서운함 같은 감정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므로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약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울리는 작고 진실한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다. 다만 내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데서 시작되는 일도 아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마음속에 쌓인 것을 아무렇게나 쏟아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지금 내 안에 머무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것이 분노인지, 서운함인지, 두려움인지, 혹은 오래된 피로가 다른 이름으로 떠오른 것인지 조용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감정은 이름을 얻기 전까지 막연한 파도처럼 나를 흔들지만, 정확한 이름을 얻는 순간 내가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해는 거창한 사건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과 경험을 기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루 동안 나를 오래 붙잡았던 말 한마디, 이유 없이 무거웠던 아침의 공기,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 작아졌던 순간, 뜻밖의 위로가 되어 준 사소한 장면들을 적어 내려가는 일은 내 마음의 방향을 살피는 과정이면서 막연하게 뒤엉켜 있던 마음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나게 된다. 별것 아닌 듯 보였던 감정의 조각들은 기록 속에서 흩어진 기분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 되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내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 알게 된다. 어떤 순간에 불안해지는지, 무엇에 쉽게 상처받는지, 어떤 말 앞에서 오래 흔들리는지 조금씩 알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경험은 나 자신을 읽어 가는 문장이자 내 감정을 해석하는 언어가 된다.

 

 

 

 

 

 결국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은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기록은 무분별한 분출로 감정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무대와는 달리, 먼저 나 자신이 그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위한 조용한 방이다. 그곳에서 나는 내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라보며, 반복되는 상처의 무늬와 오래 묵은 불안의 뿌리를 발견한다. 감정을 적는다는 것은 마음을 가두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결국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고, 나를 지키는 작은 방패가 되며, 내가 나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한 위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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