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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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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26-05-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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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지난 4월 26일 일요일. 여느때와 같이,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있는 배드민턴 동호회에 참여하여 열심히 배드민턴 경기를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복식 경기에서 공격이 진행되던 와중, 상대가 친 셔틀콕이 높이 떠올랐다. 명백한 찬스 상황. 그 공을 치기 위해 움직이던 순간,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고, 순간 정신을 차리자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일단, 눈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시력에는 별 문제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시야를 가리는 어떤 액체의 감각. 피가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찢어졌거니 생각했다. 그렇기에, 별 일 아니라는듯 넘겨버리고 상처의 감염을 막기 위해 습윤 밴드로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병원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가 상처를 살펴보자마자 봉합 수술을 진행해야한다고 말했고,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그때부터, 점점 불안감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봉합이 끝난 후, 간호사가 상처 관리를 위한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근육까지 찢어졌으니, 운동을 자제해야한다. 환부에 물이 닿으면 안된다. 실밥은 일주일 후에 뽑도록 하자. 순간 깨달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난 꽤나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그것도, 얼굴 한가운데에 있는 미간 부위에.

 

 점점 부정했던 현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근육층까지 깊게 파고든 상처. 거기다, 날붙이가 아닌 배드민턴 채에 의해 짖이겨져버렸다. 그 말은 곧, 봉합 부위가 일반적인 날붙이에 찢어진 상처에 비해 더 난잡하고, 넓찍하다는 뜻이었다. 흉터가 남지 않을거라 부정하고 싶었지만, 흉터가 남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내 인생의 큰 축을 담당하던 운동을 못하게 되었고, 내 미간사이에 어떻게 남을지 모르는 흉터에 대한 스트레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날 괴롭혔다. 거기다, 미간 사이에 존재하는 상처가 벌어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얼굴 표정도 제대로 짓지 못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물리적으로 삶에서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상처가 생긴이후 며칠동안은, 머릿속으로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라켓을 맞는 그 순간 이랬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봐도 이미 생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느정도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불의의 사고. 정말 운이 나쁜 사고긴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고로 가져가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철학자 니체의 유명한 문구가 생각났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날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문구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큰 불운과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그것에 무릎 꿇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을 뜻한다.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니체는 '아모르 파티(운명애)'라고 불렀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까지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내 미간에 상처를 남긴 사고는,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불운이었고, 나에게 시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저 방구석에서 내 불운에 분노하며 누군가를 원망할지, 아니면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단단하게 만들 계기로 삼을지는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앞으로 삶을 살면서, 많은 사건사고를 마주할 것이다. 이번 사건보다 더 클수도 있고, 작을수도 있다. 그때마다, 이번 사고를 기억해낼 것이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어떻게 대처했는지 되새기며, 냉정하게 지금보다 더 나은 대처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이토록 깊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어보았기에, 나와 같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해 주며, 공감해 줄 것이다. 언젠가, 이번에 일어난 이 사고가 나에게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아모르 파티'의 태도로,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로 나아가는 길일 테니 말이다.

 

  위버멘쉬로 나아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지금도 밤에 세수를 할 때 거울을 보면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니체 또한, 위버멘쉬는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라고 말했지,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사고를 어떻게든 아모르 파티적 태도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것이 내 미간에 남을 상처와, 나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사고의 억울함에서 벗어나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상처를 통해,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해 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위버멘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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