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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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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278회 작성일 26-06-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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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신앙의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였다. 이 책은 종교적 믿음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위대하고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나약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품은 끝까지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반대로,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는 선택은 정말 배신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침묵』의 배경은 기독교가 금지된 17세기 일본이다.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는 스승 페레이라가 일본에서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신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신앙을 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로드리고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신앙의 시험이 아니었다. 숨어서 기도하는 신자들, 붙잡혀 고문당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 믿음을 부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확신을 조금씩 흔들어 놓는다. 신자들은 고통 속에서 신을 부르지만, 신은 아무런 기적도 보여 주지 않으며 로드리는 끊임없이 신에게 묻는다. 왜 이토록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왜 믿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버려진 것처럼 죽어 가야 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신은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으며, 그 침묵은 때로는 신의 부재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인간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응답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침묵은 너무나 차갑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로드리고가 신앙을 부정한다는 의미로 성화를 밟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성화를 밟는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신부로서, 신앙인으로서 그것은 분명한 패배처럼 보이지만 그가 밟지 않으면 다른 신자들이 계속 고문을 당한다. 이 장면에서 로드리고의 선택은 더 이상 개인의 신앙심을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며,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일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일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나는 쉽게 “끝까지 버텼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배교한 페레이라가 믿음을 버렸고, 일본의 권력 앞에 굴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를 단순히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포기한 것은 단순한 체면이나 명예가 아니며, 그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신앙과 현실, 구원과 고통 사이에서 무너진 사람이지 않을까.

 

 『침묵』에서 종교는 개인의 믿음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기독교를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외부 세력이 침투하는 통로로 보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기도와 믿음은 국가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되었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어야 할 신앙조차 권력은 시험하고, 감시하고, 꺾으려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종교 박해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권력이 인간의 양심을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히 절망만을 느낀 것은 아니다. 믿음이 항상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때로 믿음은 흔들리고, 부서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모습으로 남을 수도 있다. 로드리고가 성화를 밟는 순간은 신부로서의 몰락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인간들의 자리로 내려가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더 이상 높은 곳에서 순교와 신념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인간들 곁에 서게 된다. 끝까지 로드리고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신이 정말 침묵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함께 있었던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믿음이나 신념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되며, 극한의 고통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흔들릴 수 있고 어떤 선택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았다. 어쩌면 신이 침묵하는 순간에도 인간은 끝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다시 묻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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