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밥값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64회 작성일 26-06-19 10:43

본문

 

'불교에 진심' 을 읽고

박사 지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불법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여러 번 당연한 것들 위에 기대어 살아간다. 잠에서 깨어 숨을 쉬고, 몸을 씻고, 학교나 직장에 가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그중에서도 식사는 가장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이라서 오히려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고, 맛이 있으면 만족하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쉬워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 밥을 먹는 일을 대단한 일로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라는 첫 문장을 읽고 나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결과로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놓인 밥 한 그릇은 그저 조리된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 자연의 시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과정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평소에는 가격을 지불했으니 당연히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수고를 충분히 갚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식사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라는 말도 처음에는 조금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밥 한 끼를 먹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를 심판하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문장은 나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받은 것에 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말에 가깝다. 누군가의 수고와 자연의 도움으로 얻은 음식을 먹고도, 나는 너무 쉽게 불평하고 너무 쉽게 낭비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받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에는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이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만 크게 보고, 지금 가진 것보다 아직 얻지 못한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불안하면 더 가지려 하고, 피곤하면 더 보상받으려 하고, 공허하면 당장 채울 무언가를 찾는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만족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감각이었다. 고로 공양게에서 말하는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라는 구절은 단순히 밥을 적게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을 구분하라는 가르침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먹는 이유는 결국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단지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과, 더 바르게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다르다. “불법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도 종교적인 표현을 넘어, 내가 이 몸을 유지해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읽힌다. 밥을 먹고 힘을 얻었다면 그 힘으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함부로 쓰지 않고, 내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덜 거칠고, 받은 것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에게 주어진 과분한 매 끼니마다 거창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 내가 먹으려는 것이 몸의 필요인지 마음의 욕심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감사히 받고, 필요한 만큼 먹고, 그 힘으로 오늘을 조금 더 바르게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매일 지불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밥값일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