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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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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추준홍
댓글 0건 조회 3,270회 작성일 22-11-0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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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 천국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는 천국의 법정 앞에 선다. 그리고 그의 전생,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최근에 육신을 가졌던 아나톨 피숑의 삶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이다. 아나톨 피숑은 본인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이자 가장,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하지만 천국에 있는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세계에서의 도덕, 법이 아니다. 


“불행한 아내, 방치당한 아이들, 날림 판결의 피해자들, 풀려난 범죄자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피고인의 말마따나 경범죄에 불과해요. 제 최고의 카드는, 피고인한테는 최악이 되겠군요, 따로 있어요. 바로 피숑 씨의 최대 피해자 말입니다.  … 바로 그 자신입니다! … (중략) …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천생연분을 몰라보고 다른 배우자를 택한 죄,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재능을 낭비한 죄. 이 두가지가 아나톨 피숑에게 ‘태어나는 형벌’을 받게 한다. 아나폴 피숑의 전생, 잠자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엘리자베트 루냐크가 선택했던 삶을 배신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루냐크는 다음 생의 본인, 즉 아나톨 피숑으로 환생하기 전, 많은 것을 결정했다. 태어날 성별, 국가, 부모, 직업, 강점과 핸디캡, 사랑, 그리고 미래의 죽음까지도. 새로운 나의 육신과 삶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 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에요.”


하지만 모든 것이 전생의 선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유전과 카르마만이 정해지고, 자유 의지를 가지고 다른 요소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아놀트 피숑은 자신의 재능을 져버리고 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주장하며 환생을 거부하고, 결국 환생이 아닌 천국에서도 판사를 맡으며 이 희곡은 마무리된다.





전생의 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전생의 그 혹은 그녀는 어떤 재능을 가졌고, 어떤 취미를 가졌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떤 죽음을 맞이했을까. 환생의 직전의 순간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다음 생의 성별, 국가, 부모, 장점과 핸디캡, 천생연분의 짝, 죽음을 결정했을까. 다음 생은 좀 더 편안하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고생하더라도 덕이 있는 인물로 살기를 바랐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전생의 내가 바랐던 삶일까? 유전과 카르마에 따라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의지로 운명을 바꾸어 지금의 내가 된 것일까. 전생의 내가 선물해준 나의 재능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그래서 환생을 기다리며 선택을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많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또 물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입구와 출구 사이에 존재한다. 삶이란 두 단어 사이에 생긴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다. 이 공간을 채우는 요소는 개인마다 너무나도 다르다. 방식 또한 다른데, 그것은 유전(부모와 성장 환경), 카르마, 그리고 자유의지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좀 더 간략히 말하자면 운명과 자유의지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아놀트 피숑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자유의지로 바꾸는 경우도 있고, 운명에 순응하고 평온적인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나의 지난 삶은 어떠했는지 돌아보았다. 수동적인 생각이지만 자유의지보다 운명을 믿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운명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삶에 있어서 모든 결정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 조차도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유전과 카르마로 정해진 내 기질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지금 되돌아보니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이지 않나 싶다. 자유의지로 많은 선택을 바꿀 수 있었지만,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부족했고, 나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았기에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전생에 대해, 현생에 대해, 그리고 다음 생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이다. 한번뿐인 ‘나’로 사는 인생이기에 운명이든 자유의지든 중요치 않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 인생을 사랑하며, 같이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는 것. 이것들을 이룬다면 삶의 출구에서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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