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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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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2,824회 작성일 22-11-05 21:50

본문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규섭

 

감각은 스스로 얼마나 불완전한 줄도 모르면서 확신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장 그르누이는 후각의 천재다. 마치 음악의 천재들이 그러하듯, 냄새에 이끌려 춤춘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무언가의 냄새구나 하는 정도의 단순한 정보로 그치는 것에서도 그는 더 세분화되고 깊은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에게서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를 마주한 자들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인간에게 왠지 모를 혐오감을 느낀다. 그것이 냄새 때문인지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모두가 그렇다. 사람으로부터 거부 받는 그의 삶은 생존에 매우 불리하였을 터지만, 그는 그런 시선 속에서도 진드기 같은 집요함으로 생존한다. 그리고 몇 번의 기회를 거쳐 자신의 재능을 만개한다. 사람들의 시선 뒤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냄새를 구현할 수 있는 조향사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생선 썩는 악취가 풍기는 노상 좌판에서 태어난 그르누이는 그 괴물 같은 출생을 잊지 않은 듯, 지나가는 자리마다 거치는 사람들의 삶을 파멸시켰다. 그에 의해, 때로는 그의 의지와 상관 없이도 파괴되는 삶들의 모습은 마치 사신이 지나간 자취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음산한 기운만이 돌 뿐이다.

향을 다루는 일에 익숙해지고 삶의 목표를 잃은 그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매력의 향기였다. 매력적인 소녀의 향기를 얻기 위해 그는 최초의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 소녀의 향기가 그의 삶을 다시 움직인다. 그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향기를 재현하고자 다시금 폭주한다.

결국 마지막 살인으로 완성된 궁극의 향수를 만들고 그는 체포된다. 그리고 처형 당일 그는 수많은 관중이 모인 곳에서 향수를 연다. 그리고 그 향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만다. 그르누이의 처형을 보기 위해 증오로 모인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고,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르누이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는다. 그토록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했던 이들이 매력적인 향에 가려져 추악한 자신의 진면모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탈해하기도 한다. 마지막 피해자의 아버지인 리시는 영리한 인물이었던 만큼 그르누이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 역시도 향기에 취해 그를 증오하던 마음을 잊는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 그러한 향기를 만드는 일에 성공한 그르누이는 허탈한 감정으로 도시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다시금 향수를 뿌린다. 그 곳에서 세상 가장 낮은 자들에게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아지다가, 그들의 탐욕스러운 사랑에 갈갈이 찢기어 잔혹스러운 최후를 맞이한다.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세 가지 장면이 있다.

그르누이는 궁극의 향기 속에서 깨닫는다. 그토록 갈망해왔던 일을 이루었음에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랑의 향기는 분명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가 증오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하고 증오받는 것에서. – 본문 중에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증오조차 사람들의 사랑과 숭배를 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에게서 단지 그가 연출한 분위기만을 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향기의 가면, 도둑질한 향기에 불과했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 그래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감정인 증오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그럼에도 자신은 그 어떤 냄새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르누이는 인간의 냄새를 가장 역겹게 느꼈다. 스스로 가질 수 없는 냄새이기 때문에 느꼈던 열등의식일지, 아니면 사랑의 매력을 느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내재된 추악한 면모가 냄새로의 발현되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르누이가 <인간의 냄새> 역시도 구현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단순화 시키면 그 냄새는 대체로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 같은 냄새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그 냄새를 지니고 있었고, 사람마다 기본적인 그 냄새에다 보다 세밀한 어떤 냄새를 추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개인적인 분위기, 한사람 한 사람을 구분해 주는, 바꿀 수 없는 암호인 이 체취를 냄새 맡지 못했다. … 유행하는 인공적인 냄새로 자신만의 고유한 냄새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냄새, 사람들의 원시적 악취 속에 있을 때에만 편안해 했고, 그 속에서만 안전하다고 느꼈다. 때문에 그들은 그 구역질 나는 인간의 냄새를 갖고 있는 사람만 자기들과 똑 같은 사람으로 간주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고양이 똥 반스푼, 작업대 밑에 식사 때 흘린 오래된 치즈, 정어리 통조림 뚜껑에 방치된 덩어리, 가스토레움, 암모니아, 사향, 윤기를 낸 뿔, 살짝 태운 돼지가죽으로 만든 역겨운 냄새, 가장 악취스러운 장소에서 나는 냄새, 시체썩는 냄새가 나는 향료를 만들었다. 그 위에 페퍼민트와라벤더, 테르펜틴과 레몬, 그리고 유칼리로 된 향기층을 만들고, 희석시키자 신선한 성분들 아래 악취가 가리워 지고 ‘생명의 향기가 그 향수에서 힘차게 퍼져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가장 강렬하게 묘사된 마지막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처벌당해야 할 처형장에서 향수 몇 방울만으로 그는 오히려 환대받고 추앙받는다. 그를 악마라 비난하던 사람들은 그르누이 본인 스스로도 인정한 악마를 눈앞에 두고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본능과 쾌락에 몸을 맡기며 광란의 파티를 벌이다가 정신이 돌아오고나서야 수치심을 느낀다. 그르누이가 도망치고 난 뒤, 다른 대체자를 처형하고 온 도시가 자신들의 죄와 함께 그르누이의 죄와 악마성을 은폐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과거 그르누이와 그의 살인행적에 대한 그들의 절절하고 격렬했던 증오가 허무할 정도다.

도둑, 살인자, 무법자, 창녀, 달영병, 젊은 불량배 등 온갖 종류의 천민들이 다 모인 그곳. 그가 태어났던 자리에서 그는 다시 향수를 연다. 그들은 외경심과 놀라움으로 주춤거리다가,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강력한 흡인력 속에서 그의 일부분이라도 가지려는 원초적인 열망 앞에서 그의 몸은 갈갈이 찢겨나갔다. 그 끔찍한 행위 이후에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조차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살인을 비롯한 죄를 짓는 것에 익숙한 이들임에도! 그러면서 그들은 동시에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완) – 본문 중에서



도시의 사람들과 이들의 반응에는 다시금 이러한 차이가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그 차이는?

 

작가는 이렇듯 후각과 냄새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다루었다. 이는 부제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후각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민감하고, 동시에 두루뭉실하여 다른 감각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던 감각을 내세워 기존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던 인간 내면의 본질들을 새로운 언어로 짚어간다.

그르누이의 악마성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저 그들과의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구분지을 수 있었을 뿐이다. 영민한 리시조차 알아채지 못한 시점에서 작가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르누이가 만든 사랑의 향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 강력한 사랑의 향수, 신의 힘을 가진 향수가 아니더라도 작중 내내 그르누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놓치는 많은 냄새들을 지적한다. 그들은 그러한 냄새에 이끌려 이리저리 행동한다. 그르누이를 증오의 괴물로 만든 인간들의 태도는 언뜻 그의 악마적 탄생과 그에 따른 일련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 악마의 힘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불행들이 필연인듯 일어나고, 그 중심에 있는 그르누이에 대한 사람들의 처우는 당연하게 보이기 까지 한다. 그것이 필연이든, 악마적 힘에 의한 것이든 사람들이 느낌 혐오의 기반에는 불완전한 감각이 있다. 선한 이들 마저도 인간의 향기가 없음을 인지하면서부터 그에게서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그를 대했다. 유일하게 그러한 편견에서 조금 자유로웠던 자는 에스파니스 후작으로 그는 자신의 명성을 위한 도구로써 그르누이를 철저히 이용하는 관계였다. 그르누이를 인간으로써 대하지 않았을 때에,(그래서 감각에 의존하지 않았을 때에) 그나마 가장 인간적인 대우가 가능했다 점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가 사고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때때로 감각은 정보화 되기 전에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사고의 원천인 감각을 우리는 의심할 줄 모른다. 감각과 이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완전성을 지적함으로써 작가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살짝 드러낸 것 아닐까? 그리고 냄새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휘발되어 버리듯이, 작가는 다시 이 모든 것을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대기 속에 흩어버린다. 세기의 악마, 장 그르누이가 모두의 기억에 남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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