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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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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윤희
댓글 0건 조회 2,920회 작성일 22-08-0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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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강세형

-       도대체 나중에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그저 나의 무력함이 슬펐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아끼는 누군가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뻔한 위로를 던질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가끔씩 힘들다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밖에 해줄 수 없는 상황이 슬펐다. 카톡의 몇 자로 통화선 너머로 말 몇 마디로 나의 위로가 전해지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게 슬펐다. 그 몇마디마저도 그에게 불편함으로 남을까 그냥 멀리서 지켜볼 때도 있다. 그렇게 무너질듯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조차도 나눠줄 수 없는 어리숙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의 많고 많은 연락처 중에 굳이 나를 찾아와주는 이들에게 뭐든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인걸까. 아니면 내가 그런 사람이 필요해서인걸까.

 

-       그런 날이 있다

예능 프로를 맡고 있는 어떤 작가는 일을 하면서 제일 서글펐을 때가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던 날이라 했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웃기는 이야기를 써내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서글펐다고.

직장 생활을 하는 어떤 친구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수 밖에 없더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또 어떤 만화가는 말했다. 어머님 상 중에도 독촉 전화는 걸려오더라고.

 

누구든 그런 일이 있을 거다. 마음껏 슬퍼하고 울고 싶은 날에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날이.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그리고 나의 삶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이런 삶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조차도 녹록치 않은 세상에게 애석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밀려드는 일들이 뭐가 그렇게도 중요한지 우리들을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잠깐 목 놓아 울고 싶을 때도 빨리 발을 구르라고 외친다. 눈이 시뻘게진 상태로 ‘어른답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동료를 볼 때면 너무 애처롭다. 그들의 성숙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쉽게 울지도 않고, 투정도 부리지 않고, 다 괜찮은 척을 한다. 예전에는 멋지게만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그 모습이 더 안쓰럽다. 이제는 그게 다 ‘애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버려서인가보다. 고난과 역경에 얼마나 굴렀으면 지친 하루가 별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는지,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가늠도 할 수 없다.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한 채 오늘을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씁쓸하고 속상하다.

 

-       화분

원래 모든 식물은 물을 찔끔찔끔 너무 자주 주면 안돼. 더 갈증이 나서 죽어버리거나 썩어버린다고. 물을 주고 싶어도 국 참았다가 품종마다 3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혹은 보름에 한번. 충분히 흠뻑 물을 주는 게 중요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심지어 잘 키우려는 화분마저도. 내가 마음 내킬 때 마음 주고 싶고 내가 지칠 때는 놓아버리고 싶었는데 참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일도 사람도 ’한결같음’에 목 매달았고, 지나치게 집착했다. 의젓해지고 싶어서, 어른스러워지고 싶어서 잔잔해지려고 했다. 위태로운 상황과 항상 흔들리는 내 모습을 감추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불안함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본능과 욕구를 억누르는 내 모습이, 그리고 그런 내가 익숙해져버린 게 미우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처와 불안함만 남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내 자신의 손발을 묶고 꾹 참는 법을 가르쳤다. 글쓴이 말처럼 나는 ‘화분을 기를 수 없는 인간’인 걸 알아서 오늘도 한결 같음에 집착한다.

 

-       웬만해선 화가 나지 않는다.

나도 한 때는 사소한 불의에도 파르르 떨며 어떡해서든 그 상황을 고쳐보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런 변화는 화를 내봤자 짜증을 내봤자 답답해 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 일도 세상엔 많다는 걸 알아가면서 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고통과 불행에 지나치게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포기가 빠른 사람이 되어간다. 귀찮아져버려서 눈 감고 넘어가버리고 만다. 모든 상황에 초탈해질수록 그게 더 쉽고, 에너지가 덜 드는 일이니까. 그 귀찮음은 끝없은 이해심으로 포장될 수 있다. 그냥 이해라는 단어 하나면 화도 짜증도 낼 필요도 없어지고 답답해 할 이유도 사라진다. 무언가를 뜯어 고치려고 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듯 지쳐버리는 것은 나라는 걸 학습해버린 우리는, 뜨거웠던 가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냉정하고 딱딱한 마음만 남았다. 가끔은 ‘혹 아주 큰 불의 앞에서도 이 끝없는 이해심으로 그 상황을 외면해버리지는 않을까’ 내 주변에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남의 이야기로만 끝나게 될까 무섭다,

 

-       아무리 천천히 가도

아무리 천천히 가도 놓치는 것들이 있다는데 늘 부산스런 마음, 늘 정신없는 하루. 그 안에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걸까 싶어서.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씩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 뒤처지고 있단 생각에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질 때. 그래서 더 부산스러워지는 마음, 정신없어지는 하루. 그 안에서 내가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최근 연구실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됐네, ’눈 깜빡하니까 지금이네’와 같은 말이다. 매너리즘에 쉽게 빠질 수 환경에 있는 나는 흘리듯 놓쳐버리는 것이 많아져간다. 그래서 순간 순간 증발해버리는 내 시간들을 묶어두고 싶어서 작은 장치들을 설치해둔다. 아침의 햇빛에 흐드러지는 풍경 한번 눈에 깊이 담고, 습한 밤거리의 온도도 깊이 숨쉬어본다. 길거리에 사진 한 장, 음식 사진 한 장은 그 잠깐의 행복을 다시 기억하기에 충분했고, 주변이들과 주고 받은 우스운 이야기와 그들과 주고 받은 애정 어린 말들을 되새김질 하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되었다. 내 손길이 닿은 집안의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 시작해보지 않았던 취미를 하기 위해 무턱대고 악기를 사는 것은 쉼 없이 흘러 가는 시간에 책갈피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소리내어 읽다보면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게 흘러 갈 수 있을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더 눈에 꼼꼼히 담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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