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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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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5,693회 작성일 22-09-0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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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자살 사건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잔잔한 여름 휴가를 보냈다. 어떤 날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밀린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혼자 그냥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새벽 바람이 한결 가벼워지고 싸늘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 최승호 시인의 우화집을 다시 꺼내보며 '눈사람 자살 사건'을 묵독해보았다. 전반적으로 슬프고 우울한 느낌이 담긴 글들을 보며 애써 외면해왔던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최후를 맞게 된 눈사람은 과연 행복했을까. 이 눈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이러한 물음들과 함께 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어떤 독자는 그저 눈사람이 불쌍하고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평했고, 어떤 독자는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를 읽은 느낌이라 평했다. 그리고 또 어떤 독자는 시와 가장 어울리는 분위기의 곡들을 모아 16분짜리 영상으로 감상을 대신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w5csVeAjc 해당 영상 댓글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이 하나 있다.

  


"네 생명을 나에게 주렴, 새 생명들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게." 봄은 눈사람에게 조곤조곤 속삭이었다. 눈사람은 조용히 미소만 지은 채였다.

한동안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조용히 품어주었다. 눈사람의 미소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봄이 찾아왔다.



최승호 작가의 본래 창작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따뜻한 봄이 오려면, 필연적으로 차가운 눈사람은 녹아 소멸해야 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놓고서 온전히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눈사람의 입장에서 쓰여진 시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가 굉장히 슬프다. 평생을 차갑게 살아온 눈사람은 똑같은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죽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은 온수를 틀면서 따뜻하게 죽기를 원한다. 그렇게 작가의 마지막 배려로 눈사람은 따스한 최후를 맞는다.



"그럴거면 아예 냉동고로 들어가서 계속 살지 그랬어?"



가장 충격적인 평이었다. 뉴스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평생을 차갑고 소외되며 외롭게 살아온 눈사람들에게 지나가던 낯선 이가 건네는 이러한 냉소적인 반응들도 우리 사회가 흔하게 지니고 있는 어두운 단면이다. 누구는 이런 눈사람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는 반면, 어떤 이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하여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렇게 차가워지고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요즘 사람들은 대가 없는 선의를 쉽게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한 분을 제외하고, 인생을 살면서 만났던 대부분의 어른들은 나에게 기브앤테이크 법칙을 빼놓지 않고 항상 가르쳤다. 남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논리이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담당했던 은사님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외면하지 말고 힘껏 도와라. 인생을 조금 손해 보고 사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최승호 시인의 작품들은 대체로 많이 어둡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일부러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이지도 않으며 밝고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냉정한 현실을 작품 속에 강렬하고 짧게 녹여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눈사람 자살 사건'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고 매번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담담해지고 먹먹한 기분이 들게 하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기에 주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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