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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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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승현
댓글 0건 조회 2,767회 작성일 22-09-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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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사

안태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국에서 제작하고, 한국인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 <기생충>이 한 해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를 뽑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이는 아시아가 배출한 최고의 감독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나 ‘이안’감독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기생충은 작품상뿐만이 아니라,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중요한 상은 모두 받았다.

 <기생충>은 그동안 아카데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월트 디즈니 이후 하루에 제일 많은 아카데미 상을 받은 기록을 남겼고, <기생충> 제작을 맡은 영화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는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동양 여성이 되었다. <기생충>을 둘러싼 한국 여론의 반응은 다양하다. 마치 올림픽처럼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한국의 승리로 치환해 축하하는 사람도 있고, 100년의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영화가 드디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반응도 있다. 반대로, 이건 봉준호의 쾌거지, 한국 영화의 승리가 아니라며, 제2의 봉준호가 나오지 않는 한국 영화시장의 문제점을 꼬집는 여론도 존재한다.


  한국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쏟아지는 시기에 ‘한국 영화 100년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안태근’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가 제작되는 현장을 직접 체험했던 개인적인 경험과 홍콩 영화와 한국 고전 영화에 대한 정보력으로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의 흐름을 자세하게 다룬 하나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2013년에 집필된 책이라, 현재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상까진 담지 못했지만 한국 영화의 역사와 지금까지 영화시장을 성장시킨 숨겨진 인물들을 조명한 가치만으로 꼭 보존해야 할 자료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부분도 존재하는데, 한국 영화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산발적이고, 백과사전처럼 정보를 나열한 이 책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할 수 있을 듯하고, <쉬리> 이후 한국사회에서 주류 예술로 변모한 한국 영화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평론과 평가가 부족해 최근의 한국 영화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친절한 책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영화의 역사는 1919년 10월 27일, ‘의리적 구투’라는 연극에서 영상의 한 형태로 처음 등장하게 된다. 리얼리즘 기반에 활극 형태의 영화를 만들어가던 일제 강점기 초기, 나운규의 <아리랑>이 탄생하게 된다. 항일적 성격을 띤 이 영화는 그 당시 일제의 만행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한국인의 얼을 주목한 작품으로 그 당시 많은 시네필과 한국 예술인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민족영화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 정책이 시행되면서, 영화인들이 창작의 자유를 잃어가고, 그들은 영화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는 중국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 정기탁과 이경손과 같은 상하이파 감독들이 중국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특히, 안중근 열사를 소재로 한 <애국혼>은 ‘정기탁’이 연출한 사회비판의식을 담은 일제강점기의 유일한 항일영화로서 비록, 중국에서 제작되었으나 한국인이 연출하며 한국과 관련된 소재를 차용하고, 한국 영화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 한국 영화의 정체성을 계승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상하이파 감독들은 한국 영화의 특성을 중국 영화에 이식하게 된다.

  광복 후, 반공 영화와 전쟁 기록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한국 영화시장은 성장을 거듭하며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만들어진다. TV라는 매체가 등장으로 미디어 경쟁 체재에 돌입하며,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휴머니즘과 반공사상을 담은 전쟁 영화들과 심리적인 내면과 사회성이 짙은 폭력 영화들을 제작하며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70년대부터 정부가 음악, TV, 영화에 대해 검열을 강화하면서, 80년대까지 한국 영화의 암흑기가 이어진다. 물론, 검열 안에서 시대적인 은유를 나타낸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으나 많은 감독과 영화인들이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한국 영화가 침체한 시기에 홍콩 영화가 전성기를 맞았고, 한국 영화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홍콩 영화를 견제하기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시행하게 되고, 이때 한국과 홍콩 간의 합작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협력해서 만든 영화라도, 이 시절 영화들을 한국 영화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규제를 피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작사들은 위장으로 합작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그 당시 만들어진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정체성이 전혀 들어있지 않고, 한국 감독의 오리지널 영화를 합작영화로 둔갑시키거나 날림으로 만드는 행태를 보여 한국 영화 쇠퇴가 가속화 되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끝나고, 한국의 민주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지만, 한국 영화는 과거의 전성기를 되찾을 기세를 잡지 못했고, 홍콩 영화 전성기 때처럼 한국 영화는 스크린 쿼터제에 맞서 할리우드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틀어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같이 예술영화의 선전은 꽤 있었으나, 한국 영화와 대중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의 대담한 액션 로맨스 영화 <쉬리>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도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영화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켰고, IMF를 겪으며 정부에서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 영화생산체제로 바뀐다. 이 상황에서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와 같이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를 연출하는 신예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며,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만드는 감독들의 출연에 한국 영화계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발전과 더불어, ‘내 머릿속의 지우개’, ‘엽기적인 그녀’, ‘부산행’, ‘신과 함께’와 같은 작품들이 외국에서 선전하면서 한국 영화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기생충’이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아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정점을 누리게 된다.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한국영화사에서 더 잘 알려져야 할 감독들과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영화의 영광은 분명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슬 퍼런 검열의 시대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그 열정 하나로 그 틀 안에서도 수작을 만들었던 감독들의 의지와 그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의 창작 욕구를 불태웠던 그들의 창의성이 지금의 한국 영화의 위상을 만들었고 그 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책 중반, “한국 영화에는 선배가 없다”라고 말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작가의 말처럼, 한국 영화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찾아보면, 한국 영화의 지금의 영광은 수많은 영화 선배들의 작품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에는 선배가 없는 게 아니라, 차고 넘치다 못해 가늠을 못 할 정도다.

  이 책에서 김기영, 신상옥, 임권택, 정창화 같은 과거 한국 감독들에 대한 조명과 김진규, 박노식, 윤정희, 신성일과 같은 남자, 여자배우들의 과거 활약상도 잘 설명이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감독과 작품은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체성을 일제 강점기에 진즉 확립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그의 여동생이 친일파 ‘기호’에게 겁탈을 당하려고 하자, 낫으로 ‘기호’를 죽이고 일본 순사들에게 결국 끌려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을 일본 치하에서 감시당했던 그 당시, <아리랑>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굉장히 정치적이고, 저항적이다.

이러한 <아리랑>의 사회 비판적인 특징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 영화의 특징이다. 남북관계를 담은 <쉬리>의 성공부터, 천만 영화에서 사회 비판적인 요소와 정치 풍자적인 요소들이 없는 영화를 찾기란 어렵다. <엑시트>, <부산행> 작품 모두 철저히 장르 영화로서 만들어졌으나,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현재 세대들의 고통을 장르적 규칙 안에 잘 담은 영화다. 한국 영화의 위치는 다른 국가의 영화들과 달리, 사회를 대변하는 미디어로 자리 잡았고, 이 같은 성격은 영화 <아리랑>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또, 그 당시 민족의 고통이자, ‘악’이라고 규정된 친일파 한국인을 낫으로 처단하는 ‘영진’의 폭력적인 행위는 한국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인 폭력성을 예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 6.25 – 군사정부 –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 개인의 폭력, 사회적 폭력을 모두 경험했던 한국인들의 집단적 고통과 경험은 결국 영화에서 폭력성이라는 특징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한국 영화를 구분 짓는 하나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 당시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영진’의 살인과 <기생충>의 기택의 박 사장을 향한 칼질은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그 의미는 비슷해 보인다. <아리랑>에서는 ‘친일’이라는 ‘악’이 선명하게 있기에 선과 악이 구분이 쉬웠으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누가 악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 분명 박 사장은 기택에게 물질적으로 잘못한 게 없으나, 우리는 이상하게 기택이 이해된다. 이 보이지 않는 계급 간의 불평등이라는 간접적인 위협과 사회적 악을 아마 기택과 박 사장을 통해 봉준호는 전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는 <아리랑>에서 보여준 친일파 기호를 향한 영진의 공격과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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