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일인칭 단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2,845회 작성일 22-08-05 12:24

본문

 우리는 불확실함 속에서 ‘나’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합리화하거나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자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동은 전지적이지 못한 우리의 한계로부터 극대화된다. 이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것일 것이며,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했다고 하지만 정작 오해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나’는 진정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나’를 일인칭 단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나’ 자신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굉장히 외부로부터 단절되고 불명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 혹은 혹자로부터 바라봐지는 것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숙고해보면 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지금 존재하는 내가 아닌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한다. 이러한 불확실함은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라는 분기점에서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결정해야 하는 순간은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단은 나의 의지(자의)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의지(타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그렇게 현재의 ‘나’가 존재하며, 지금까지의 선택에서 다른 결정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니버스 형식의 8가지의 다른 단편을 통해 ‘나’ 혼자만 품고 있던 기억을 풀어낸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한 여자에 관한 기억을 그리고 18살의 한 여자아이에게 피아노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기억을 이야기한다. 하나하나의 단편들은 ‘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는 것이 아닌 지나쳐온 기억을 가지고 있는 기록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억은 무슨 경험을 했는지,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의존적이며 어떻게 행동을 할지 결정한다. 선천적으로 정해진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들은 또 다른 성격으로 탈바꿈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즉 기억(경험)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얽히고 설킨 복잡한 선택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에 우리는 기록에 의해 결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억은 뚜렷하게 뇌리에 남아있을 수 있으며 흐릿해지면서 왜곡이 될 수 있고 잔상으로 잊혀져 갈 수 있다. 여기서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시간이라는 흐름에 살아남은 기억 그리고 당시에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의 기억은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지만 산산 조각난 하나의 파편인 기억을 지금의 ‘나’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기억은 과거의 나에게는 소중했을 수 있으며 과거의 선택을 하는 순간의 ‘나’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기에 지금의 ‘나’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흐름에 살아남은 기억 그리고 당시에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의 기억이지만 소멸된 기억을 통해 지금의 ‘나’를 만난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은 모래사장의 모래알과 같다. 그리고 모래알은 파도와 바람에 의해 휩쓸려 사라지기도 하며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모래사장은 남아있는 모래알, 어디로 갔는지 모른 모래알 그리고 새로 생긴 모래알로 현재를 보일 것이고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그렇다, 모래사장은 모래알의 모임인 듯 ‘나’는 기억의 파편이 모여 만들어진 것 일지도 모르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