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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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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룡
댓글 0건 조회 2,956회 작성일 22-09-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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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작년에 가입하였던 1년 적금이 다음 달 만기라는 문자 알림을 보고,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감을 느낀다. 지난 1년간 나는 무엇을 해 왔는지 생각해 본다. 앞에 놓인 해야 할 목록들을 해치우는 것에만 급급하여, 때로는 ‘비움’이 필요한 타이밍에도 ‘채움’으로만 대응해 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30이라는 생경한 숫자. 현명한 인생 설계가 필요한 시점에 ‘마지막 수업’ 책을 통해 故 이어령 선생님의 각혈하는 듯 쏟아낸 지혜를 엿들을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故 이어령 선생은 암으로 인해 삶의 끝자락에 다다를 즈음,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당신의 지혜를 세상에 선물로 남겨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이 책 저자 김지수는 그의 곁에서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스승은 저자에게 우리 모두 생의 한가운데에는 죽음이 있음을 가르치려고 했다.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어령 선생의 몸상태는 롤러코스터처럼 정상에 있다가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저자가 표현한 선생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복부까지 팽팽한 공명으로 당겨진 그의 목소리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귀의 과녁 정중앙에 꽂혔다. 그러나 그 자신, 그렇게 힘센 말을 쏟아낸 후엔 말발굽의 여진이 남아 당신의 골상을 때린다고 괴로워했다. ‘내가 쏟아낸 말들이 내 뒷골에서 웅웅거려.’”

투병 속 악화되는 몸 상태와 싸우면서도, 故 이어령 선생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자세로 저자를 대했다고 한다. 선생은, 유리컵을 빗대어 우리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가 유리컵이라면, 그 컵 안에는 어떠한 액체 이든지 담길 수 있다. 그것이 물이던 차던 말이다. 하지만 유리컵 안이 이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다. 가득 차 있는 곳에 무언가를 더 따르려면 넘치기 마련이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면, 저자세이자 초기의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해서만 달려간다. 나를 돌아보면 부족한 것만 보이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채움’도 좋지만 ‘비울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내게 부족한 점만 찾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컵에, 지금 채워진 것들이 어떤 것인가? 잔뜩 겉멋든 모습뿐이라면, 과감히 비워야 한다. 선생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속에 진실이 있다.’ 라고 하였다. 가령 코로나 때 마스크 1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서 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모두 죽음을 잊고 직장, 놀이, 돈에만 빠져 있다가 죽음의 두려움을 느꼈다.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죽음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이다.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다. 우리가 살면서 경계해야할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 잊고 사는 것, 덮어버리는 것. 익숙함에 잊어버리게 되는 것. 내게 당연한 것들. 가족과 같은 직접적인 대상일수도 있고 어떤 감정이나 관념 같은 추상적인 대상일수도 있다. 항상 느껴지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떠오르는 들춰지는 것들.

 

선생은 또한 ‘자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선생은 ‘인간은 결국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인간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가령 외로워보지 못한 사람, 내가 혼자라는 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남의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과도 관련된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의 존재는 스스로 변화해야만 한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무리 주변에서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 마음이 없다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목표가 생기고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내 스스로의 마음이 서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솔직히 말하면 타인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 라는 선생의 말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했지만, 모든 해결과 변화는 결국 나에게서 나온다는 말로 이해된다.

 선생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중략)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거센 파도를 잠재울 수 없다. 심지어는 바람에 날리는 조그만 촛불의 흔들림조차도 통제할 수 없다. 내 삶 또한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닫는 것들에 감사할 뿐이다. 기존의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새롭게 빈 자리를 채워가며 선생이 말한 ‘자족’을 실현해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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