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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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유명한 이 책 ‘이방인’은 세상과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부조리를 ‘뫼르소’ 라는 개인의 의식 속에서 표현한 문학 소설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책의 첫 문장에서 보이듯 뫼르소는 사회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그저 자신의 의식에 따라 행동하고 말을 한다. 카뮈는 이런 뫼르소를 통해 사회와 단절된 의식과 그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설명하며 부조리한 세계에서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인생의 주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카뮈의 처녀작이자 실존주의의 문학적 승리라고 평가되며 노벨상을 받은 이 소설은 주체적 삶을 위해 도덕성을 묵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크게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양로원의 전보를 들은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그는 일말의 슬픈 감정 없이 장례식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이튿날 뫼르소는 회사 동료 마리를 만나 함께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을 함께 보낸다. 그 후 그는 이웃집 사람 레몽을 만난다. 레몽의 자신의 정부를 혼내주기 위해 편지를 대신 써줄 수 있냐는 부탁에 뫼르소는 써주기로 한다. 레몽은 자신의 정부를 혼내주었고, 경찰이 찾아왔다. 뫼르소는 그를 위해 증언을 해주기로 한다. 레몽은 자신의 친구 마송의 별장으로 뫼르소와 마리를 초대한다. 그들은 레몽이 혼내준 정부의 오빠(아랍인) 패거리의 미행을 당한다. 이윽고 그들은 싸움을 벌였고, 이 싸움으로 레몽은 부상을 당한다. 레몽을 별장에 두고 따로 산책을 하던 뫼르소는 누워있는 아랍인을 만나고 권총으로 아랍인을 쏴 죽이며 1부가 막을 내린다.
2부는 아랍인을 죽인 죄로 감옥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뫼르소는 감옥에서 심문을 당한다. 변호사의 도움과 판사의 심문에서 뫼르소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판사는 그에게 하느님을 믿느냐고 했고 그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는 신을 믿지 않는 뫼르소에게 흥분했다. 뫼르소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마리와 면회를 하고 담배를 참는 등 이런저런 시간을 보낸다. 다시 여름이 되고 재판이 시작됐다. 그가 엄마의 장례식에서 한 행동이나 그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가 어머니의 시체를 보지 않았고, 울지 않았으며 다음날 희극영화를 보고, 여자와 잠을 잤다는 사실들이 배심원들에게 밝혀지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다. 뫼르소는 그곳에 이방인처럼 앉아있다. 그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고 그는 계속해서 신부의 면회를 거절하다가 갑작스럽게 들어온 신부와 면회를 시작한다. 신부와의 면회 중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울부짖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며 사형을 인정한다.
그를 사형으로 몰고 간 것은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 진실했으며 그를 판단한 많은 이들은 그에 대한 사건에 대해 판단했을 뿐 뫼르소라는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는 자기 자신이라는 실존만 존재했으며 그에게 죽음이란 어떤 가치판단이 아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었다. 죽음은 그것이 자연사이든, 총살이든, 사형이든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슬퍼할 이유가 없었고 그것을 슬퍼하지 않은 것이 죄라면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필연 앞에 선 그는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고, 다만 그가 원한 것은 사형이 집행되는 날 모여든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그를 맞아주길 원했다.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카뮈는 이성을 가진 인간의 합리적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 사이에서 모순이 생긴다고 얘기한다. 이런 모순이 바로 카뮈가 이야기한 부조리이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부조리함을 직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항이라고 했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졸고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대표된다. 뫼르소는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연관성을 찾지 못했고 세상의 일과는 무관한 이방인이었다. 자신의 욕망에 대한 자각만 있었을 뿐 세계와의 모순에 대해서는 직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서야 생명에 대한 애착을 느끼지만, 세계는 이미 무관심하다. 하지만 이전까지 무관심조차 없었던 세계로부터 따뜻한 무관심을 느낀 뫼르소는 행복함을 느끼며 사형집행을 하는 날 외롭지 않게 증오로 맞아주길 원한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합리적이라고 해도, 때론 이 사회가 몰합리적이라고 해도, 그 간격에는 성찰과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뫼르소는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생각에 진실 된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는 단절된 인간이었다. 비극은 이런 단절 사이에서 발생했다. 카뮈는 뫼르소를 진정한 자유를 찾은 인간이라고 표현하며 영웅이라 칭했지만 나는 그가 자유를 찾은 인간일지는 모르나 세계의 담론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은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자신을 수정해나가며 자아를 완성해간다. 사회적 맥락을 잊은 인간은 온전한 인간일 수 없다. 사회적 공감 없이 내면의 세계에 갇힌 인간은 삶의 부적응자이며 이방인이다.
실존이 개인 안에서만 이루어지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고립된 방종에 가깝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 안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우리는 각자가 부여받은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 하에 자신의 실존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이방인은 개인의 욕망와 사회의 규범 간의 경계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개인과 사회 간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의 요구와 자신의 욕구 사이를 살피지 못한 뫼르소와 그가 신을 믿지 않아서, 장례식에서 울지 않아서,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잠을 자서 그를 끔찍한 살인마로 몰고 간 사회의 지배적 담론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있다. 서로는 서로의 행동만 관찰할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과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시대에 만연한 부조리를 극복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개인은 자신의 합리적 욕구가 사회에 용인될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하며 사회는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개인으로서 실존을 추구하기 앞서 사회적 실존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여기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의 욕구는 무엇인가. 무엇이 사회를 좀 더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고, 내가 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숙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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